“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리라”(호6:3절)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난 인간이 하나님을 피해 살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기본적인 회개이다. 죄가 무서운 것은 하나님과의 사이에 간극이 되기 때문이다. 이 죄를 없이 하시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다. 우리의 저주까지 지시고 모진 지옥의 형벌을 대신 받으셨다. 그 일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감격을 지나 가슴이 미어진다. 집나간 자식들인 우리를 돌아오게 하시려고 몰래 빚을 다 갚고, 돌아오는 신작로를 만들고, 안내표지를 상세하게 설치하고, 천국의 언어를 구사하는 상냥한 도우미를 보내셨다.
치료하고 싸매시고 새 생명으로 일으켜 그 앞에서 살게 하시려고 부르시고 또 부르신다. 내 신앙생활에 경험에 비추면 두 가지의 실행에 가장 점수가 낮음을 깨닫는다. 첫째는 그리스도를 모신 것은 인식하지만 그런 영적인 상태에서 말하고 행동하는 패턴이 쉽게 무너진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따라 하나님께 나아가는 시간이 극히 짧다는 사실이다. 이 둘이 아직도 이 땅 사방을 기웃거리는 나의 한계이다. 그래서 아름다운 도우미이신 성령을 늘 근심시킨다.
항상 마음의 부담을 느끼며 자신의 자세에 대한 분노를 가지면서도 어중간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자신을 본다. 그만큼 세상의 바람과 파도가 세다는 뜻이다. 마귀의 재주에 내가 놀아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만큼 마귀는 무섭다. 조급하게 하고, 충동질 하고, 나태하게 하고 피곤하게도 한다. 만약 진리를 모르고 분별력이 없으면 한 마디로 말해 마귀가 가지고 논다. 진리를 알아도 일진일퇴의 공방이 시간마다 분초마다 일어난다. 마귀는 우리에게 사단(대적)이고 우리는 그들의 대적(against)이다.
힘쓰지 않으면 항상 패배한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주께서 우리 안에서 어떻게 일을 하시는지 주시하자. 힘써 그 분을 알려고 하자. 그리고 성령의 도우미의 안내말씀에 귀 기울고 주님을 따라 아버지께 나아가자. 우리는 오락가락하지만 그 분은 새벽이 오면 떠오르는 태양보다 더 정확하시다. 우리는 장대같이 쏟아지는 비가 때론 달갑지 않겠지만 사막과 같이 건조한 그 땅에 내리는 비는 달디 달다. 생명의 주를 모시고 힘써 사랑의 아버지 앞에 나아가 성령의 단 비, 새 생명의 비, 촉촉이 적시는 자비와 긍휼의 비를 맞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