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병에 걸리는가?
왜 늙는가?
왜 죽는가?
이처럼 인체의 노화현상이나 죽음에 대해 연구한 사람들은 고대로부터 있어 왔다. 결국 늙음이나 죽음이란 것이 삶과 관련된 철학적 물음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고대 철학자 플라톤은 죽음이란 것을 이데아계로의 복귀라는 것으로 이해하였기 때문에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고 죽는 순간을 ‘SIMPOSIUM'에서 행복한 잔치로 묘사한다. 이렇게 죽음이 곧 육체의 감옥으로부터의 영혼이 자유롭게 되는 순수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다분히 그리스 철학적이다.
그런데 기독교 세계관에서의 죽음은 죄에 대한 처벌이다. 기독교 관점에서의 죽음은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물리적 육체적인 죽음이고 또 하나는 영적인 죽음이다. 심장과 뇌가 사망선고를 받는 것을 육체적인 죽음이라고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것을 영적인 죽음이라고 구별하여 말하고 그러한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을 구세주에게 의탁한다. 그런 논리에서 구세주는 육적 죽음을 넘어서서 영적 죽음을 해결하는 의미를 갖는다.
자연과학에서는 죽음을 물리적 현상에서만 언급한다. 비물질적이고 영적이고 이성적인 한계를 넘어서는 부분들을 실험과 관찰의 대상으로 삼기에는 현재 자연과학의 현주소가 너무나 미흡하기 때문이다. 철학적으로든 신학적으로든 자연과학적으로든 죽음은 화두거리였고 지금도 화두거리이다. 이 칼럼을 읽는 순간에도 이 세상에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오고 떠나기 때문이며 아직도 명쾌하게 죽음에 대해 정리하고 입증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차피 모든 생명은 죽는다. 아니 죽게 되어 있기에 죽음을 향해 살아간다는 말이 맞다. 텔로미어(Telomere) 이론처럼 인간의 체세포가 50여회 이상 분열되면 텔로미어가 완전히 소실되고 결국 염색체의 구조에도 이상이 발생하고 죽고 만다는 말처럼 말이다. 물론 노화현상에 대해서 텔로미어 이론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기계처럼 자꾸 사용하면 닳아진다는 소모설, 여러 가지 유해물질의 중독으로 인한 자가 중독설, 음식을 많이 먹음으로서 인한다는 대식설, 자기 몸속에서 면역계의 반란으로 인한 자가면역설,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나 멜라토닌같은 분비물의 기능 저하로 인한 신경 내분비계 조절설, 창조자가 입력한 일정한 프로그램을 따라 노화된다는 프로그램설, 조로증의 한 형태인 워너 증후군(Werner syndrome) 같이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인한 유전자 돌연변이설, 활성산소설 등이 있다.
이러한 노화현상이나 죽음과 관련된 다양한 이론들은 사실 근본을 따지고 보면 그 말이 그 말이다. 1956년에 제기된 활성산소설도 역시 근본적으로 세포에 문제가 생긴다는 말이다. 활성산소는 일반적인 호흡에서도 계속 발생하지만 그 량은 적으며 인체에 상당 부분 도움을 주기도 한다.
활성산소의 순기능은 몸에 침입한 병원체인 세균이나 바이러스와 싸울뿐 아니라, 독성 물질에 세포가 감염되었을 시에 해독작용을 하는 생체 방어 기능이 활성산소의 순기능이란 말이다. 그러나 갑자기 격한 운동을 하거나 극심하게 분노할 경우에는 부신수실에서 노르아드레날린(noradrenaline)이라고도 부르는 노르에피네프린(norepinephrine)이 분비되게 한다. 그때 모세혈관은 갑작스럽게 움츠리게 되므로 자연히 혈액의 흐름도 잠깐씩 중지되게 되는데 그때 유해산소가 많이 발생하여 주변 세포나 DNA를 대규모 공격하고 파괴시키는 괴물이 된다. 결국 활성산소는 노화현상과 죽음을 일으키는 주범이 되기도 한다는 말이다.
활성산소가 아군으로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 거대한 에너지를 나를 공격하고 죽이는 반란군이 되지 않도록 하는 좋은 방법이 있을까? 가능한 한 내게 주어진 생명을 건강하고 행복하 나누며 살 수 없을까? 없는 것은 아니다. 좋은 해결 방법이 있다. 그것에 대한 해답이 성경안에 있고 자연안에 있고 그리고 당신 안에 있다.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말하는 자연치유에서는 늘상 그 방법을 기본으로 전제하고 말하지 않는가? 뭐 그리 복잡한게 아니다. 돈이 많이 드는 것도 더욱 아니다. 누구를 쫒아가서 그의 지식이나 힘이나 에너지를 받아서 해결할 그런 것도 아니다. 기본에서 해결하면 치유가 이루어 진다. 분노를 차분히 다스리는 자는 용사보다 낫다. 분노와 욕심을 제어하고 평정시키는 마음의 절제는 활성산소를 아군으로만 살게 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활성산소를 아군으로 만들기는 바로 마음 비우기이다. 마음을 비우기 위해서 자연안에 들어가서 명상을 하고 묵상을 하고 조용히 사색을 하는 것이다.
결국 활성산소를 계속 아군으로 만들기 위해서 바쁘고 고된 현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손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항상 기뻐하며 모든 일을 의탁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가 보자. 그것이 질병과 늙음과 죽음을 조금 멀리하는 보약인게다. 이 보약을 먹고 나서부터 당신의 구호는 이렇게 달라진다. 죽음이여! 잠시 더 안녕!
한남대학교 역사철학부 외래교수
복음신학대학교 윤리학 겸임교수
복음치유선교신학교 교무처장
***자연과건강 동맹블로그 소개*** 망건산 자연농원 :http://blog.daum.net/2003jjw/46 물레방아골 |
'건강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ABO식, Rh식 등 혈액형에도 종류가 많다 - 예병일 연세대 의대교수 (0) | 2011.10.13 |
---|---|
[스크랩] 꾸지뽕나무 효능 (0) | 2011.10.13 |
[스크랩] 증가하는 청소년 자살! 이런 이유 있다! (0) | 2011.10.13 |
[스크랩] 산초나무의 효능 (0) | 2011.10.13 |
[스크랩] 9월의 망건산 농원 오가피&제피열매 (0) | 2011.1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