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육이냐 신령한 자냐?

새예루살렘 2008. 9. 24.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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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이냐 신령한 자냐?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고전15:45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아담의 타락한 형상에 의한 옛사람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의 두 세계를 산다. 이 사이에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서 있다. 이미 그 분과 함께 건넌 십자가이지만 육신이 사단의 미혹을 받아 환경과 사정에 끌려간다. 마귀적인 사람은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을 두고 말한다. 아담 안에서는 수가 성 사마리아 여인만 마귀적인 사람이 아니라 훌륭한 정신과 인격의 니고데모 같은 이도 마귀아래에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육으로 난 것은 무조건 육이다. 골라낼 것이 없다. 다 마귀 안에 갇혀 있다.


    아담 쪽은 죄 아래 있는 사람이다.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므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다. 거기는 사망의 소굴이다. 정신 곧 혼적인 개발을 하는 곳이다. 그래서 하나님 없이 마인드컨트롤을 하려는 뉴에이지가 마귀적인 것이다. 아담 안에서는 아무리 정의로워도 불의의 세계다. 아담 안에서는 뛰어나게 의로워도 정죄를 당한 인간들의 유치장이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하나님의 영광에 나아가지 못한다. 아담이 흙이니 땅에 것만 먹는다. 거기는 세상의 지식이나 윤리나 선행의 어둠의 빛을 빛으로 여기는 암흑천지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무조건 의인이다. 죄인은 절대로 들어오지 못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 안에 있으면 그리스도의 생명이 공급된다. 그 곳에는 정신이 아니라 영으로 사는 동네이다. 정신은 그리스도에게 집중해서 그 분을 모시고 사는 그릇이 된다. 그 곳은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곳이다. 그 분의 자비의 정원에서 마음껏 뛰고 주를 노래한다. 에덴과 같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진리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에 나아간다. 아들이므로 당당히 나아간다. 그 안에서는 양식이 다르다. 그리스도의 영과 생명을 먹고 마신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주의 영광을 본다.


    우리는 날마다 이 둘 사이에 끼어있다. 두 개의 두레박처럼 오르락내리락 한다. 오른팔을 쓸건가 왼팔을 쓸건가? 당연히 난 오른팔이다. 아담으로 사는 것은 저절로 되듯이... 그래서 십자가를 붙들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로 살기 위해서이다. 아담 안에서는 예수그리스도의 부활과 장차 나의 부활만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부활이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로 먹고산다(요6:57) 왜 그 분은 생명주시는 영이시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영적인 진리를  ‘추상적인 정론 또는 신비주의’라고 한다. 나는 그들에게 ‘그래 너희들이 추상적인 정론이라고 하는 그 분이 바로 내 안에서 역사하시며 생명을 주시는 신비의 힉스입자인 호 로고스 그리스도야’라고 외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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