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라”(엡5:18절)
술은 마취제이고, 차는 각성제이다. 사람들이 놀 때는 술을, 일을 할 때는 커피를 비롯한 차를 마신다. 차는 정신을 맑게 하고 집중하는데 다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차제에 차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푸른 이파리로 만든 녹차를 마시는 것이 뇌에 좋다고 한다. 위에 부담만 없다면 녹차를 자주 마시는 것이 뇌를 맑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 반면에 술은 고통을 잊게 하고 자신으로부터 일시적으로 도피하게 한다. 옛날 막노동판에서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이 술 힘으로 일을 하는 것을 본적이 있다. 이와 같이 술은 취하고 정신을 혼미하게 하므로 성경은 술 취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자신을 마취시키는 일이 어디 술뿐인가?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향락산업이 발달한다. 사람들이 그만큼 고통하고 신음할 일이 많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물질문명에 굴복하면서 살다보면 제 정신으로 살아가기 힘이 든다. 그래서 자신을 취하게 하는 곳으로 뛰어들고 싶어 한다. 어떤 것이든 사람을 취하게 하면 그건 마취제와 같다. 마약과도 같다. 도박을 하는 사람들 중에 처음부터 돈을 따기 위해 시작한 사람은 거의 없다. 무엇에 푹 빠져 보고 싶은 마음으로부터 시작한다. 며칠 전에는 이곳 현지의 경찰 수사관인 한 친구가 지방으로 전근을 다니는 사이에 그 아내가 카지노에 빠져 가산을 몽땅 탕진하고 말았다고 푸념하는 것을 들었다.
이것이 방탕이다. 무엇인가에 빠져 시간을 허비하면 그게 방탕이다. 이 악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아 세월을 아껴야 할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런데 사람을 방탕하게 하는 종교적인 유희도 만만치도 않다. 어린아이가 각종 게임이나 오락에 푹 빠지듯이 감성이나 지성의 신앙오락이나 기복주의의 물욕파티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신앙적인 방탕이다. 교회나 지도자를 탓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 안에 있는 죄성과 육신의 정욕이 불러들인 무당이요 창부다. 그 가운데서 눈을 깜빡이고 마음 침을 삼키며 각성의 각오를 다진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오라는 주의 말씀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 주검(dead body)를 과감하게 잘라야 한다. 진리로 거룩함으로 이루어 그리스도 안에서 그 분의 형상의 영광의 풍성함을 추구해야한다. 각성은 방탕에 대한 회개이다. 그리스도를 향한 전진이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그린다. 생각 속에 그 분의 마음과 생각과 뜻을 새긴다. 성령을 모시고, 그 성령에 대한 주림과 사모함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성령의 배고픔을 놓치면 사단의 덫에 걸린다. 가나의 혼인집의 항아리에 물이 아구까지 찬 후 그 물을 떠다줄 때에 물이 포도주가 되었듯이 주의 말씀을 따라 영의 사모함을 채워갈 때에 우리는 마침내 변화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