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절)
신앙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다. 나 아닌 다른 나 곧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나로 사는 것이다. 이것은 언제나 점검하고 확인해야 할 사항이다. ‘나냐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나냐’ 만약 그렇게 되지 않으면 신앙이 육체에 의한 견인주의나 공리주의가 된다. 곧 허무함이 밀려온다. 육체적인 것은 금방 썩는다. 흙은 절대로 보석이 안 된다. 광물성이 들어가야만 보석이 된다. 따라서 나의 나 된 것이 나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된 나로 살도록 새 사람을 허락하신 주를 사모해야 한다.
바울은 ‘나의 나는 만삭되지 못하여 나와 율법의 종이 되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핍박한 팔삭둥이’라고 말한다. 또 나란 존재를 의롭다고 여기고 열정적으로 행한 일은 배설물이라고 고백한다. 죄인과 사망의 대표인 아담 안에서 태어난 나와 그 행위를 이토록 부정한다는 것은 다른 나가 있기 때문이다. 거듭났으며 하늘에 속한 자이며 새 생명으로 사는 새 피조물인 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보이는 사물이나 환경에만 적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성령의 가르침, 깨우침, 공급, 소생시키심, 인도하심, 평안과 기쁨을 주심 등이 은혜임을 알아야 한다.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다. 방주를 짓는 동안의 고달픔, 고독, 비난에 대한 수욕을 그 은혜로 다 이겼다. 결국 그 방주로 구원을 받았다.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이다. 그 은혜가 노아로 하여금 온갖 역경 속에서 방주를 짓는 에너지가 되었다. 다윗에게도 천부적인 자질이 많았다. 용기, 음악성, 시인, 군인정신 등이다. 그러나 이런 것으로 인해 다윗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인해 자신이 사용될 수 있음을 찬송했다. 신앙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나를 위한 기초공사 곧 뿌리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신앙은 결과보다 원리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바른 원리는 좋은 결과를 낳는다(요15장)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엡3:17)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나를 만드는 과정의 기도이다. 포도나무 가지는 포도가 열리지 않으면 아무짝에 쓸모가 없다. 이쑤시개 감도 안 된다. ‘나요’ 할 만한 감이 전혀 없다. 오직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고 접붙여 주신 그리스도를 굳게 붙드는 길 밖에 없다. 우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가 부활과 하늘의 형상, 그리고 생명을 주시는 영이라고 말하심은 바로 나의 나 된 것은 내가 아니란 말이다. 또 설령 남보다 더한 수고가 있어도 그 또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행한 나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