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1:15절)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 앞에서 한 없이 낮추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고전15:8)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 사도라 칭함을 감당치 못할 자’(고전15:9)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엡3:8) 그리고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어쩜 세상에 가장 못난 사람의 자화상 같아 보입니다. 때로는 팔삭둥이나 칠삭둥이로, 때로는 사도나 성도들 중에 맨 꼴찌로, 때로는 죄인들 중에서 가장 질이 나쁜 죄인으로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극악무도한 죄인이거나 아직 구원에 대한 확신이나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자신이 없어서 이런 말을 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더군다나 겸양을 떠는 자세로 한 말은 더욱 더 아닙니다. 성경에서 낮은 자를 높이는 것은 피동입니다. 죄와 사망에서 의와 생명으로 저주의 땅에서 축복의 하늘로 올리는 것은 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낮추어 그 분의 은혜와 긍휼 앞에 낮추는 것은 능동입니다. 스스로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의 풍성함을 받은 사람이 결코 교만할 수 없습니다. 자신을 티끌로 낮출 수밖에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다윗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티끌로 어린아이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을 낮출 수 있는 한도까지 낮추었습니다.
물 없는 웅덩이에 빠진 요셉은 미디안 장사꾼들의 손을 통해 구해주시고, 감옥에 갇힌 그를 술 맡은 관원장의 꿈 해몽을 통해서 하나님이 건져 애굽의 총리로 올려 주십니다. 그것을 안 요셉은 결코 꼴값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구원하려고 하나님이 나를 먼저 보내신 것이지 절대로 형들이 아닙니다, 옛날 일로 근심하지 마세요’ 이렇게 나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과 오래 참음과 섭리의 오묘함을 크게 맛본 사람은 절대로 자신의 공로나 자격이나 희생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바울은 삼층천을 본 사람이기에 만물의 찌끼같이 사람들의 구경거리같이 낮은데 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낮추는 것은 아직 처리할 죄가 남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아직도 받아야 할 하나님의 은혜가 많고, 하나님의 긍휼 앞에 선착순으로 뛰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뛰어든 일에 겨우 하나님의 백성을 가두고 죽이는 일을 한 자신을 구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의와 진리의 비밀을 알게 하시고, 그 영광을 보게 하신 그 하나님의 긍휼이 너무 크기에 자신을 낮추어 그 은혜와 긍휼과 오래 참으심을 보이신 하나님을 드러내고자 함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아는 사람일수록 자신을 낮춥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과 그 경륜에 강하게 붙잡힌 사람일수록 자신을 희생의 제물로 던집니다. ‘이 백성을 죽이시려면 차라리 나를 생명책에서 지우소서’라고 한 모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