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주는 마음, 복된 마음

새예루살렘 2008. 11. 3. 16:47
별 표시하기
주는 마음, 복된 마음 관련제목검색
  2008년 10월 31일 금요일, 오전 00시 09분 30초 +0900
 


Daum 카페

 
주는 마음, 복된 마음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6:38절)


    죄인은 이기적, 의인은 이타적이다. 이기적인 죄인으로 태어나 그리스도 안에서 의인으로 거듭나서 이타적인 천국체질을 익혀 이타적인 사람들만 사는 영원한 하늘나라에 간다. 어떤 사람이 재미있는 말을 지었다. ‘천국에도 가보고 지옥에도 가 봤는데 두 군데 다 긴 포크로 음식을 찍어 먹고 있었단다. 그런데 지옥에는 긴 포크로 자기 입에만 집어넣으려고 하니 매양 귀 뒤로 돌아가서 포크가 뒤통수에 닿아 하나도 먹지 못해 빼빼 말라 피골이 상접해 있더라.  그러나 천당에는 비록 긴 포크이지만 둘이서 마주보고 서로의 입에다가 먹여주니 잘 먹어 살이 통통하게 쪘더라’ 유치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일찌감치 ‘주고 살아라, 주는 자가 복이 있다’ 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그러나 현실은 이런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만다. 어떤 조사에 의하면 사악한 사람이 성공하는 이유는 더 멋있게 자신을 포장할 줄 알고, 일을 더 능수능란하게 처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처세술이 능하다는 말이다. 실제로 그런 것 같다. 그렇지만 성경은 그러한 악한 자들의 형통을 불평하지 말라고 하신다(시37:7)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시대를 알고(시73:15)하나님 앞 성소에 들어가기(시73:17)전까지는 악인들의 도가 넘는 형통함 때문에 하마터면 미끄러져 실족할 번하기까지 했단다(시73:2)   


   나는 처음부터 주고 사는 사람인 줄 알았다. 젊은 시절부터 늘 그랬으니까. 그러나 어느 날 그 주는 것조차 내 자신을 위함인 줄 알았다. 하나님께 헌금하는 것도 드리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마저 그 분과 거래하고 있었음을 훨씬 나중에 알았다. 그래서 11년을 한 교회를 섬기면서 한 번도 헌금설교를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타적이 되지 않은 죄인에게 주라고 하는 것은 물질구제 뿐이다. 그들이 하는 일은 가급적이면 덩치가 커서 남의 눈에 띄기 좋은 것을 고른다. 연말이면 고아원을 방문해서 선물꾸러미 풀어헤치고, 하루 자원봉사하고 돌아오면 기분이 확 풀린다. 그러나 그 행사에 동원되어 구겨지고 팽개쳐진 그 고아들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발견된 자로서 묵상과 기도와 간구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신의 품성을 이타적으로 부지런히 개량하라고 권하고 싶다. 성품이 바뀌고, 남을 축복하고 남을 먼저 생각하고 챙기면 축복의 사람이 된 것이다. 그래서 산상보훈의 8복이 이루어지는 것이 천국시민의 절대윤리인 것이다. ‘남을 축복하라, 주라, 남을 먼저 챙겨라’ 말하지는 말라. 다만 자신의 성향을 체크해 보라. 복을 받은 사람은 남을 축복한다. 긍휼을 받은 사람은 긍휼을 베푼다. 사랑을 받은 사람이 사랑한다. 결국 받고 또 받고를 반복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이타적인 사람이 된다. 수묵화처럼 그리스도의 마음이 번진 것이다. 바로 행동하는 의인이 된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