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나니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롬14:7-8절)
예전에 혈기 충천해서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하고 하늘을 찌르듯 고래고함을 칠 때가 있었다. 그 때에 아프리카에 나가있던 선교사님의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로다’라는 메시지를 들은 적이 있다. 선교는 저렇게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이구나 하는 정도로만 받아들였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어느덧 그렇게 사역을 한 분들의 사명의 바통을 내가 물려받아 안고 있다. 살고 죽는 것이 우리의 소관이 아닌 것처럼 살고 죽는 목적 또한 우리를 위함이 아니다. 요즘 자살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열심히 살다가 그 삶에 대한 항변으로 죽어간다. 그 죽음조차도 자신을 위한 셈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나죽으나 주의 것이며, 살아도 죽어도 주를 위해 살아야 한다. 그 이유는 육신의 목숨도 주의 것이며, 영원한 생명도 주의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분의 의지가 아니면 머리카락하나 까닥하지도 못한다. 키를 한자도 늘리지도 줄이지도 못한다. 죽고 싶어도 그 분이 결제하지 못하면 죽지도 못한다.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참새, 두 앗사리온에 한 마리를 덤으로 다섯 마리에 거래되는 그 보잘것없는 참새도 하나님의 사인이 없으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세고 계신다. 아침마다 머리 감을 때에 몇 번 머리카락이 빠졌는지 이미 파악하고 계신다(마10:29-30)
그러므로 두려워 말라. 그분으로 살고 그분으로 죽는다. 그분으로 흥하고 그분으로 망한다. 삶의 순간마다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 아프고 슬픈 사정을 아뢸 때에 ‘그래 알았다’하시면 그걸로 된 걸로 여기자. 이 상천하지에 그분보다 더 센 분이 어디에 있는가? 그 분이 ‘얘야 알았다’하면 끝이 아니런가? 그리고 포기하지말자. 그 분이 ‘너는 정말 안 되겠어’하고 나를 포기하기 전에 절대로 자기를 포기하지 말라. 그렇게 쉽게 포기하려고 그 분이 하늘 영광을 비우시고 우리를 찾아오지 않으셨다. 그리 쉽게 버리려고 십자가에 6시간 동안 물과 피를 다 흘리시며 나대신 지옥의 형벌을 받지 않으셨다.
하다 안 되면 뒤돌아 가시려고 우리 안에 영생으로 오시지 않으셨다. 우리 안에 그 분이 계심은 그 분의 고집스런 작정이며 계획이며 열심이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신 그 피맺힌 사랑을 말릴 자는 없다. 그러지 말라고 덤빌 자도 없다. 그러면 다친다. 왜 쟤 같은 사람에게 생명을 주느냐고 어느 누구도 시비할 자가 없다. 그 분은 긍휼히 여김을 받을 자를 긍휼히 여기신다. 내가 사나 죽으나 그 분의 것이듯 그 분께 붙어 맡긴 나의 인생 또한 그 분의 살고 죽음에 의한 것이다. 그 분이 영존하신다면 나도 영원하다. 죽음에 초연하라. 서푼어치 안 되는 자존감을 십자가에서 다시 내리지 말라. 우리는 죽어도 그 분의 것이요 살아도 그분의 것,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