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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와 자백

새예루살렘 2009. 5. 13.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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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5월 11일 월요일, 오전 07시 13분 41초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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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와 자백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의 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셀라)”(시32:5절)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1:9절)


  잘못된 행동을 볼 때에 사람들은 회개하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렇지만 성경이 요구하는 회개와는 거리가 먼 신앙의 어휘일 때가 많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종의 회개 곧 죄인의 회개와 아들의 회개인 의인들의 회개는 서로 다르다. 종들이 아무리 뉘우치고 애걸을 해도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날 수가 없다. 하나님이 죄인들을 위해 보내신 주 예수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  들이고 아무 가능성이 없는 자신을 위해 그 분이 하신 일을 믿어야 한다. 이게 생명을 얻는 회개이다(행11:18) 가장 기본적인 회개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회개하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행2:38)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죽을 짓을 한 것이 인간의 근본적인 죄라면 이제 그리스도라는 살길을 제시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일차적인 회개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중요한 회개이다. 신학적으로 말하면 회심이다. 이를 두고 성경은 회개라고 한다. 율법주의자들은 어디 가서 자신의 잘못을 잔뜩 털어놓고 엉엉 울면서 눈물을 한 말이나 흘려야 회개인 듯 느껴지겠지만 대단히 미안하지만 간단하게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믿고 모셔 들이는 것이 참 회개이다.


  그리고 요한일서에서 말하는 죄라는 행위의 결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빛이신 그리스도를 떠나 어둠과 사귀는 상태를 말한다. 누가복음 15장의 집나간 탕자의 비유를 생각해 보면 금방 이해가 된다. 이 탕자가 집에 돌아오는 과정이 바로 회개이다(눅15:7) 그 탕자가 집을 나간 자리에서 아무리 통곡을 하고 죄를 뉘우치고 흙을 뒤집어쓰고 무릎을 꿇고 앉아 있어도 참 회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게 바로 아버지의 뜻에 맞는 회개이다. 그러나 그 집안에서 묵묵하게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일한 맏아들은 지금도 자신들은 그리스도인들이라 표방하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에서 퇴출이 된 사람들의 모습이다.


  요한일서나 시편의 자백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미혹이 되어 어둠 곧 사단의 수중에 들어간 자신을 깨닫고 아버지 앞에 자백을 하고 빛으로 되돌아 올 때에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함을 얻는 반복되는 회개이다. 그 때에 모든 생각을 정결하게 하신다. 이제 바로 자복이며 자백이다.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의 회복이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그 상태를 ‘홍수가 범람할찌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하리라’고 노래한다(시32:6b) 잘 한 것은 하나도 없고 죄를 깨닫고 철저하게 자복한 것 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하늘에 속한 자, 곧 아들들의 회개이다. 이 일에 불만이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율법주의이다. 그렇게 하도록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현저하게 값없이 보는 일이다.

  

   얼뜨기 전도자들이 사람들을 십자가 앞에 집합을 시켜 놓고 영혼을 대량 학살을 하고 있다. 그 증거는 입으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운운하면서 법 정신의 잣대로 사람들에게 들이댄다. 그리고 알지도 못하는 회개를 하라고 닦달을 한다. 이들이 바로 거짓말 장이들이며 사단의 수하들이다(요8:44)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으로 인해 입혀 주신 흰 두루마기를 알지도 못하고, 이를 빨아 입고 성에 들어가는 비밀을 모르는 사람들이다(계22:14) 십자가 위에다 유리벽을 만들어 놓고 건너편을 바라보도록 하고 건너 가지는 못하게 한다. 그럴만한 실력이 없다. 만약 우리에게 유리벽이 있다면 이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담에게서 그리스도에게로 건너 간 다음 그 자리에서 옛 사람을 바라 볼 수는 있어도 다시 건널 수 없는 유리벽이 있을 뿐이다.


   또 다른 신앙의 유형은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으로 십자가를 지나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고백하기는 하지만 천국은 죽은 다음에 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건 유리천장이다. 예수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것을 바라보라고만 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가자는 소리를 하지 못한다. 항상 ‘바라보자 주님 계신 저 곳을... 나중에 다시 오시겠지’ 하고 만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과 승천을 통해 하나님께 가는 길이 되셨다. 닫힌 천국 문이 열렸다. 그리고 성령을 보내 주시므로 그리스도께서 가신 그 길을 따라 그 곳에 갈 수 있는 길이 뚫렸다.


  바라보기만 하고 갈 수 없는 유리천장을 만들어 놓으시고 ‘너희들을 하늘에 앉히었다 나를 따라 오너라 일어나라 나와 함께 가자고 말씀하시겠는가?’ 우리에게는 이제 유리바닥이 있을 뿐 더 이상의 유리천장은 없다. 적어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성령의 인도와 그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라면... 어둠의 세상과 저주의 나라를 내려다 볼 수는 있지만 다시 되돌아 갈 수 없는 유리바닥이 깔려 있을 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가는 길을 막는 유리천장은 없다. 그러므로 율법주의가 되어 유리벽을 만들어 놓고 회개 운운하지 말 것이며 진리를 알지 못하고 유리 천장을 만들어 그 자리에 붙들어 놓고 하늘을 바라보고 애걸복걸하도록 만들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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