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모든 육체는 영광을 보리라

새예루살렘 2009. 1. 5.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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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1월 05일 월요일, 오전 08시 52분 01초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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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육체는 영광을 보리라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사40:5절)


   인간은 영광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합니다. 외모, 학벌, 재력, 명예 등이 다 영광으로 치부됩니다.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은 하나의 가설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람들 스스로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영광의 차등이 있습니다. 오늘은 기독교가 왜 제값을 발휘하지 못하는지 그 핵심의 원인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든든한 인생의 보호자를 모신 심리적인 보장만도 아니고, 장래에 대한 확실한 보험만도 아닙니다. 믿는 자가 보는 영광이 있습니다. 보는 것만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것을 획득하는 영광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 안으로 부르시고 의롭다하시고 영화롭게 하셨다’(롬8:30)하심에도 그 영화는 죽은 다음에 된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으로 영화(靈化)된 사람은 영화(榮華)롭게 되었습니다. 썩고 망할 육체가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영과 생명을 받아 그 형상을 찾았으니 영화롭게 된 것이 아닙니까? 이것이 바로 영광을 본 것이 아닙니까?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영광은 나중에 죽어서 천국에 가서 보고 영화도 그때에 이루어진다고 연기를 시킵니다. 소경의 미혹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보니 독생자의 영광이요’(요1:14) 이 영광은 그리스도를 모신 사람의 심령에 머무는 현재의 영광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성육신의 사건 곧 지상의 모습에다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소경이란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구약성경을 철저히 연구하고 예수의 인적사항을 세세히 파악하고 있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바로 지적인 소경이 아니라 영적인 소경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벧전1:11)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도 ‘바로의 공주의 아들과 애굽의 보화의 영광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능욕을 받았다’(히11:24-26) 예수가 아닌 그리스도로 강조한 사실을 주목하십시오. 믿음의 대상을 예수에게서 그리스도 나아가서 하나님께로 지평을 넓혀주시길 바랍니다. 이 영광을 보는 문제와 직결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 골수 신앙인들을 향해 ‘너희들은 사람의 영광만 수집하고 하늘로부터 오는 영광을 구하지 않는다’(요5:44)고 하십니다. 현재 기독교인들은 그들과 다를까요? 왜 기독교가 물신과 명예욕에 빠졌다고 비방을 받나요? 그게 그들의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자신들의 신앙의 영광인데 포기하고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겠습니까? 혀 짧은 서당 선생이 ‘바람풍’하고 싶어도 언제나 ‘바담풍’만 연발하고 맙니다. 여호와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보리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온누리에 광고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나와 함께 있는 자들이 나의 영광을 보게 해 달라’고 아버지께 간절히 기도하십니다(요17:24)


  삼층천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을 본 바울은 ‘주의 영으로 그 형상으로 화하여 그 영광으로 영광을 보리라’ 단언합니다(고후3:17-18) 기독교의 개혁이나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혁명은 이 영광을 본 자들에게만 이루어집니다. 장래의 상급 때문에? 그건 거짓말입니다. 우리의 뇌는 언제나 당면한 현실 앞에서 장래에 대해서는 전원이 꺼지고 맙니다. 그렇게 똑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그 아들의 영으로 그 아들의 영광을 우리의 심령에 새겨버리십니다. 궁창위의 별들의 영광입니다. 지고한 가치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긍지입니다. 백절불굴의 자존심입니다. 이 영광을 다 같이 보도 또 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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