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골3:1-12절)
참 기도는 ‘당신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그리스도에게 기도하는 것’이라고 말한 앤드류 머리님의 말을 이해하는 것은 그 의미가 매우 크다. 어휘의 부적당으로 더 이상 표현할 길이 없을 것이다. 골1-2장의 내용을 찬찬히 읽다보면 가슴이 뛰다 못해 터질 것 같은 벅찬 감동을 주체할 수 없다. 우리의 구원은 죄 사함, 생명, 천국 이런 몇 개의 단어로 다 표현할 길이 없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자신이 받은 은혜나 깨달음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만 앵무새처럼 강조하고 제자리에 머물지 말기를 부탁한다.
그것만 강조하고 자랑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영혼이 메마르고 냉담해져 교만하게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달리긴 달리는데 찬바람만 스치는 느낌을 받는다. 왜 그런가? 가만히 생각을 해보자. 예수그리스도는 위로부터 오셨다가 위로 올라가셨다. 그리고 우리를 사로잡아 그 분 안에 있는 사랑의 줄로 단단히 묶어 하나님 우편에 앉히셨다. 그리고 자비로운 아버지께서 준비하신 모든 신령한 복을 공급하실 수속절차와 준비를 다 마치셨다. 머리이신 그분에 이르도록 키우실 장치를 마련하시고 우리들에게 말씀을 전하신다.
문제는 전파되는 그 복음의 한계로 인해 예수그리스도와 그 분이 하신일이 엄청나게 축소제한을 받고 있다. 쉽게 말하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값이 액면가 이하로 유통되고 있다는 말이다. 그 원인은 앞으로만 치닫는 습관에 의해 위로 향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에 가도 맨 앞자리에 앉아야하고, 세상 어딜 가도 맨 앞자리가 금값자리란다. 물론 구약의 성전에는 번제단을 지나 지성소로 전진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을 뵙는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도 뒤돌아보지 말고 그 분을 따라 앞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이젠 상황이 다르다. 그 분은 위로 올라가셨다. 그 분이 길과 진리와 생명이심은 위로 올라가기 위함이다. 세상은 앞으로 치닫도록 한다. 수영의 박태환이는 앞으로 빨리 나아가서 금메달을 땄지만 우리는 다르다. 위로 올라가야 한다. 예수님이 육신으로 계실 때에는 ‘얘야 날 따라와’하셨지만 지금은 ‘얘야 올라와라’ 하신다.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하늘 위의 사람이다. 해 아래의 사람이 아니다. 해 아래는 수고와 슬픔만 있다. 아무리 앞으로 달려가도 썩을 것 밖에 없다. 그러나 위로 올라가신 우리 주 예수 안에 우리의 몫과 값이 다 들어 있다. 생각을 위로 끌어 올려보라. 거기에서 우리는 구름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듯한 평안함과 초연함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