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4-15절)
요3:16절의 말씀이 크게 부각되고 나니 이 부분의 말씀이 가려집니다. 사실은 매우 중요한 구절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으심을 예고하고 그 이후에 믿고 영생을 얻는 사건이 일어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독생자는 인자이신 예수님일까요? 부활과 생명의 영이신 그리스도이실까요? 물론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며 그리스도가 예수이십니다. 다만 어느 쪽에서 그 분을 믿고 곧 영접해야 하느냐는 문제제기입니다. 3일 전이냐 3일 후냐, 십자가 전이냐 십자가 후냐, 구약의 마당이냐 새 언약의 마당이냐, 육의 세계냐 영의 세계냐, 요한의 세례냐 그리스도의 세례냐, 이성이냐 계시이냐 등등의 믿음의 구획이 다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독생자를 예수로 봅니다. 그리고 그 선 자리에서 본 예수를 믿습니다. 그리고 그를 다시 기다립니다. 그리고는 그를 닮아간다고 말합니다. 성령도 말하고, 십자가의 도도 말합니다. 문제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진리가 없습니다. 길이 없어요. 그 심령에 하늘의 은사를 담을 그릇이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기사에 감격한 사실뿐입니다. 그 이유는 십자가의 장벽에 가로막혀 있기 때문입니다. 요단 건너 편 광야의 땅입니다. 십자가만 바라 볼 뿐 건너간 사실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십자가는 이미 인자가 달리신 다음 다시 살아나시고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신 후의 십자가입니다.
천주교처럼 예수님을 매달아 놓은 십자가가 아니라 그를 통해 사망에서 생명으로 건너 온 옛길의 추억의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열정이나 뜨거운 감정의 확인이 아니라 정신을 똑 바로 차리고 자신의 위치와 소속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믿고 있는 주가 십자가의 전의 예수이냐 후의 그리스도이냐? 예수를 믿어 그를 좇아가려고 하느냐? 그리스도를 믿어 그 분이 이룩한 이전의 공로로 그 분과 하나된 것을 수용하고 그 분과 동행하고 있느냐? 이건 그리스도의 세례를 알고, 진리 안에서 연합되어 하나님을 찾아 가는 비밀을 알고 있는 믿음입니다. 다 같이 십자가의 도, 생명의 길, 예배에 대한 말을 하지만 한 쪽은 자신이 앞으로 가야 할 일이라고 여기고, 다른 한 쪽은 이미 십자가를 건너 온 자로서 여하히 주 예수그리스도에게 자신을 복종시키느냐 하는 게임을 합니다.
한 쪽은 회개를 자신의 잘잘못의 관점에서 보고, 다른 한 쪽은 빛을 벗어난 자신, 육체와 세상을 뒤돌아 본 자리에서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향해 정렬을 하는 것으로 봅니다. 한쪽은 생명에 관하여 말을 하지만 한 쪽은 생명을 맛보며 삽니다. 한 쪽은 성령의 능력에 관하여 말하지만 다른 한 쪽은 성령의 기름부음을 체험하며 삽니다. 흡사 한 쪽은 전기에 감전이 되어 본적이 없이 남의 말만 듣고 전해주는 것과 같고 한 쪽은 자신이 직접 전기에 감전이 되어 보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한 쪽은 태백산 눈 구경을 하지 않고 상상으로 말하는 것과 같고, 한 쪽은 보고 만끽한 다음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