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그 아들과 그 아들의 영

새예루살렘 2008. 12. 30.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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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12월 10일 수요일, 오전 07시 55분 39초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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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들과 그 아들의 영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로 부르게 하셨느니라”(갈4:4-6절)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려면 그 분과 그 분의 하신 일을 다 믿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요3:16절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 독생자(one and only)가 육신으로 오신 예수로만 생각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셨다는 빅뉴스에 시선이 고정되어 고난 받으신 주 예수그리스도만 알고 그 고난 후에 얻으신 영광(벧전1:11)에 대해서는 그만 캄캄한 상태가 되고 있습니다. 막연히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다시 오신다 심지어 그 분이 다시 오시면 공중 혼인잔치까지 참여한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말 그대로 휴거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신데 장소를 따지면 우편 좌편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안 바람 바깥바람이 섞이는데 오른편 왼편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요? 우편이란 의의 편, 곧 하나님이 옳다고 하신 편이며 하나님의 능력의 편이라는 의미일 뿐 공간개념이 아닙니다. 그리고 공중이란 말도 육신에 속한 사람들의 공간차원의 의식일 뿐입니다. 공중이란 육신의 하늘과 땅의 세계의 하늘이 아니라 영의 하늘과 땅의 하늘입니다. 땅에 속한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 그리고 하늘에 오르심에 포함되었으면 우리가 그 공중(궁창)에 속한 자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물론 신앙의 차원에서 첫 단계는 거듭나서 그리스도 안에 있어도 여전히 신앙의 행위를 스스로 일으키는 혼적인 신자, 곧 종교적인 의인들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어도 어린아이들입니다(고전3:1) 그 다음 신령한 자 곧 그리스도와 그 분의 십자가의 도를 통해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는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단단한 식물을 먹을 수 있는 단계입니다(고전3:2) 분명히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고, 또 아들의 영이 우리 안에 오셨습니다. 인간인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해 인간으로 오셨고, 영이신 하나님을 아바아버지로 부르도록 하시기 위해 아들의 영으로 오셨습니다. 예수가 슬그머니 영으로 화하여 우리 중에 거하는 것처럼 생각하지 마십시오.


   신학지식으로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신다고하고 그 분을 하나님 우편에 올려놓고 그 아들의 영이 우리 안에 계시는 이 놀라운 뉴스를 가리지 마십시오. 안 믿어지면 애통하며 지혜와 계시의 영을 달라고 바디매오처럼 매달리세요. 갈라디아교회가 겉으로 하는 척하는 종교적인 행위로 돌아간 것은 죄를 속량하러 오신 그 아들은 알고 있으나 그 아들의 영이 그들 안에 들어오셔서 그들의 주체가 된 사실을 거짓 복음이 가렸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이 땅에 온 사실과 그 아들의 영이 우리 안에 오신 사실은 다 실체적인 진실입니다. 아들로서 오신 예수가 이루신 구속의 역사를 바탕으로 그 아들의 영이 우리 안에 오셔서 하나님을 아바아버지로 부르게 하고, 우리를 그 분의 상속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아무도 이 사실을 바꿀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