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8:31절)
구원은 자신이 하나님의 선택과 부름을 알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서 그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모르고 들어갔다가 이미 자신이 하나님께 아신 바 되었고, 그리스도 안에 예정이 되어,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 그 분 안에서 영화롭게 된 사실을 압니다. 어디 영화가 따로 있는가? 죄인으로 태어나서 거듭나서 그리스도의 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영광의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며 그 분께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이 바로 영화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구원의 문에 들어 갈 때는 '아무나 오라' 하는 안내판을 보고 들어가서 뒤돌아 보니 '택한 자만'하는 안내가 있더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죄 가운데 있는 사람 즉 십자가 앞에서 서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불공평에 대해 늘 불평합니다. 왜 쟤들은 공짜로 입장을 시켜줬느냐는 시비입니다. 그 일에 대해서는 우리가 할 말이 없고, 그들 또한 하나님 제발 그렇게 불공평하지 말라고 따질 수도 없습니다.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담을 그릇을 만들던 담지 않을 그릇을 만들던 그건 아무도 따질 수 없습니다. 엿 장수 가위 질은 엿장수 마음대로입니다. 왜 쟤들을 의롭게 했으며 왜 쟤들을 특별하게 챙기느냐고 항변하고 말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비 앞에 농성하고 까불다간 유대인들처럼 다칩니다.
우리의 구원은 개인별로 그리스도에게 나아갈 일이 아닙니다. 물론 말씀을 받는 것은 개인적으로 시간이나 상황이 다르지만 구원은 한 묶음입니다. 아담 안에서 그리스도에게로 단 한 차례의 거래로 끝이 났습니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6시간 동안의 십자가의 사투와 그 분의 다시 사심의 이 대속의 한 사건으로 아담 안에 있는 죄와 사망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의와 생명으로 일망 타진했습니다. 다만 그 적용은 개인적으로 시차가 다를 뿐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말씀을 듣고 그 안에서 믿어 성령의 인침을 받아보면 우리가 뿌리가 같고 줄기도 열매도 같은 성분임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임을 알고 서로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롬8장의 한 쪽 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이고, 다른 한 쪽 문은 '아무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자가 없다'입니다. 우리는 그 안에 갇혔습니다. 그 사랑 안에 그 집념 안에 그 자비와 끈질긴 인내 안에 붙잡혔습니다. 이걸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합니다. 그 안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아 그리스도의 생명의 나라에 수용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은혜를 압니다. 왜 나를 여기에 앉혔는지 그 뜻을 압니다. 나로 인해 하나님이 비방을 받으시는 그 아픔도 알게 됩니다. 내가 그 안에서 어떠한 존재가 되어가야 할지도 압니다. 그 분의 인자와 성실하신 인도하심에 나의 인생을 포기하는 법도 배웁니다. 우리 어머니가 '네 아버지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지 아냐?' 하시면 아무 나는 할 말이 없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