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지존자의 은밀한 곳

새예루살렘 2008. 11. 7.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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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자의 은밀한 곳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시91편:1-4절)


    구약은 신약의 그림자이다. 외국 영화를 치면 구약은 활동사진이고 신약은 한글 자막과 같다. 신약을 모르고 구약만 알면 그림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감동은 받지만 자신과 상관이 없는 이야기가 된다. 신약을 안 다음 구약을 알고 신약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적용하면 구약에서 활동하신 여호와가 바로 우리 안에 계시는 또 우리의 의의 옷과 장막이 되시는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된다. 그렇게 되면 구약의 이스라엘의 이야기가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나의 이야기, 아브라함, 모세, 다윗의 여호와가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된다.


   어떤 사람은 마태복음이나 히브리서는 유대인을 위한 말씀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성경을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성령의 조명이 아니라 자신이 성경을 연구하고 분석하는 지성적인 자세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성경은 누구누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나의 이야기이다. 성경엔 이스라엘의 족보이야기가 있지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나의 족보에 대한 책이다. 그래서 인 맞은 자들이 144,000명(인은 내 것이라는 보증, 계7장)이 아니라 단 한 명이라도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으면 그게 바로 나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성령과 함께 하고 있는가, 악령과 함께 있는가이다.


   지존자의 장막, 곧 예수그리스도 안과 하나님 안에 있는 자이다. 바로 반세반석이다. 거기가 나의 피난처이며 요새이다. 나의 의와 양식과 장막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의뢰하고 그 분 안에 거하고자 하는 깨어있는 상태이다. 거기는 사냥꾼의 올무와 재앙으로 인한 병으로부터 보호를 받는 구역이다. 지금 이 시대에서 나를 해치려고 숨어서 그물을 치고 노려보고 있는 사람들의 피해와, 날로 더 극성스러워지는 질병에서 보호를 받는다면 큰 복이다. 그리스도 안이 피난처와 요새가 되는 이유가 바로 그 안에는 이와 같은 것들이 도저히 건드릴 수 없는 하나님의 통치구역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방어와 공격 두 가지 무기가 있어야 한다. 주께서 그 날개로 암탉이 병아리를 모음같이 우리를 그 날개아래에 보호하시고 감추신다. 제사장이 발도 보이지 않도록 완전무장을 하듯이 우리는 육신의 모습이 하나도 드러나지 않도록 십자가의 도를 따라 주 안에 숨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시간마다 주를 의뢰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그 분의 진리의 말씀으로 강하고 튼튼해야 한다. 진리는 사람을 강하고 담대하게 하신다. 이것이 바로 앞서 가는 큰 방패가 되고 개인 방패와 된다. 이스라엘은 항상 눈에 보이는 적과의 전쟁 상태다. 그러나 우린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공중권세 잡은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