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요셉과 같은 총무

새예루살렘 2008. 10. 28. 14:11
별 표시하기
요셉과 같은 총무 관련제목검색
  2008년 10월 27일 월요일, 오전 00시 31분 59초 +0900
 


Daum 카페

 
요셉과 같은 총무


   “그가 요셉에게 자기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치니라”(창39:5절)


   요셉에게는 애굽이 길을 잘못 든 여행과도 같다. 완전히 타관이며 이국이다. 낯설고 물설다. 하나님의 섭리이긴 하지만 형제들에 의해 인생이 굴절되어 애꿎은 운명을 산다. 애굽에 이민을 가려고 준비한 자금도 없다. 은 20에 팔린 노예일 뿐이다. 주식 한 장 없고, 땅 한 평도 없어 쌀 직불금이 뭔지도 모르고 가을이 되어도 추수에 대한 향수도 없다. 제 집도 없어 주택양도세니 부동산 경기니 하는 이야기도 관심 밖이다. 그나마 은20에 팔릴만한 가치가 있어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려 일을 해 주고 얻어먹어 굶어 죽지 않고 헛간에서 밤이슬을 맞는 노숙자의 신세를 겨우 면하고 있다.


   이런 사람이 하는 일에 성경은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창39:23)하신다. 인간의 가치관과 하나님의 비전의 간극이다. 형들의 미움을 받아 노예로 팔리고, 보디발의 집에 가서 살만하니 그 아내의 농간에 궁중감옥으로 가고, 거기서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풀어주고, 그 일로 인해 바로의 꿈을 해몽해주고 그 대단한 나라 애굽의 총리가 된다. 보디발의 집의 총무가 애굽의 총리 되었다. 누가 이를 두고 그리스도의 인간과 같이 낮아진 비하와 하나님 우편에 승귀하신 예표라고 했다던가? 일리가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는 바로 성도의 예표이니 우리가 이 시대의 요셉이 아니런가? 누가 이 땅에 나는 너무 잘 왔다고 할 사람이라고 있나 없다. 다 가시밭길이다. 누가 선뜻 요셉이 앉은 바로 다음 서열의 의자를 선뜻 내어주지 않는다. 치열한 적응의 싸움터의 고난이다. 그러다가 그리스도인들조차 은근슬쩍 세상에 길들여져 그만 애굽화 되고 만다. 야곱은 12아들이 있지만 실세는 셋이다. 레위와 유다와 요셉이다. 레위는 오직 하나님께 제사만 드리는 전업 제사장이다. 유다는 두루 돌아보고 챙기는 왕권을 가졌고, 요셉은 그 당시의 경제권을 쥔 세계적인 실세이다.


   우리는 지금의 경제적인 위기에서 요셉을 한 번 반추해 봐야 한다. 그는 하나님의 꿈을 받은 사람이며, 여호와가 함께 하시는 복 있는 사람이다. 자신이 이를 알고 여호와 이름을 바로 앞에서도 시인하는 하는 사람이다(창41:16)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심을 보디발도 보고, 바로도 알게 한 사람이다(창39:3, 41:38) 한 마디로 아무것도 없는 자이지만 하나님의 복을 지니고 있다. 이 사람으로 인해 애굽의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된다. 하나님이 요셉을 위해 보디발의 집을 축복하고, 요셉에 의한 이스라엘을 위해 애굽을 축복한다. 그리스도가 함께 하는 사람, 그가 주신 비전을 안고 있는 사람은 어디서나 형통하고, 그로 인해 주변이 복을 받는다. 복을 끼친다. 지금 이 시대는 이런 가정의 총무, 교회의 총무, 회사의 총무, 나라의 총무가 필요한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