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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세례

새예루살렘 2008. 9. 14.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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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8월 09일 토요일, 오전 02시 17분 15초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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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세례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12:13절)


  많은 사람들이 세례라 하면 무엇을 위에서 쏟아 붓는 식의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것 때문에 성령세례를 잘 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한 때에 한국의 신학계에서 이름을 날린 C 교수 같은 분도 성령세례를 위에서 기름을 붓는 오순절의 경험과 같다는 논조의 글을 썼다. 그 영향으로 지금 책이나 여러 카페를 보면 성령세례는 방언이나 어떤 특별한 체험을 통해 받는 것처럼 진실을 호도하고 있음을 본다. 그러나 한 마디로 말하면 성령세례는 외적인 체험이 동반될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성령의 세례와 성령의 충만은 다르다.


   물세례가 물에 잠기는 것이듯 성령 세례 또한 성령에 잠기는 것을 말한다. 그 때에 죄 사함과 그리스도의 생명을 맛보므로 사람에 따라 실제적인 큰 경험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것을 믿는 것으로 성령의 세례를 받았음을 확인하는 사람도 있다. 성령의 세례는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 한 영으로 하나 되게 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그래서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 잠기는 것이 바로 성령세례이다.


  성령에 대한 특별한 체험을 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이 다가와서 믿고 시인이 되든지 다 성령의 임하심이며 그것이 바로 성령의 세례인 것이다. 바람이 임의로 불되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바람이 부는 것을 알듯이 성령의 세례는 그 역사의 결과를 통해 우리가 체득할 수가 있다. 성령이 아니고는 결코 예수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부를 수 없다(고전12:3) 가룟 유다는 죽을 때까지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는 도마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없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는 단절된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를 다시 이을 수가 없다. 성령만이 영이신 하나님과 육체인 인간을 화목하게 하실 수 있다. 성경의 화목은 원수로 있다가 화해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합치는 것 곧 하나가 되는 것이다. 성령이 없이는 그렇게 될 수가 없다. 성령이 아니고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에게 공급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예배가 성립이 안 된다. 성령과 진리 안에서 그 분의 생명이 흐르므로 우리는 그 강줄기를 타고 하나님께 나아가서 경배와 찬양을 드릴 수가 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한 영, 한 몸이 되어 그 성령을 계속 마시는 것이 바로 성령세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