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부끄러움을 이기는 사람

새예루살렘 2008. 7. 11.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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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7월 11일 금요일, 오전 09시 02분 14초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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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을 이기는 사람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


  하나님이 그의 자녀들을 징계 하시는 것 중에는 말씀을 반복하시는 잔소리(?), 활동을 제한시키는 고독, 그리고 수욕이 있다. 그 다음에 병이나 가난 등등의 고난이 있지만 이 정도까지 가면 말이나 노새 취급을 받는다. 아파야 주의 고삐를 알 정도면 맞아야 정신을 차리는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이런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를 향한 징계인지 가두어 놓고 양육하심인지 잘 모를 정도인 것은 이 둘이 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죄로 인한 고난이든지 하나님의 섭리를 따른 고난이든지 주와 함께 하면 합력해서 유익이 되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선민이 할례 없는 이방민족에게 망해서 수염이 뜯기고 매 맞으며 개처럼 끌려가는 것이 너무 부끄러웠다. 그런 것이 그를 울게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뺨을 때리면 맞는 수욕에 배가 불러라 하신다(애3:3:30) 왜냐하면 하나님의 징계가 끝이 나면 풍성한 자비로 긍휼히 여길 것이기 때문이란다. 많은 사람들이 고독에 강해야 대물이 된다고 말을 하는데 나는 수욕에 강해야 대물이 된다고 여기는 편이다. 우리가 어찌 감히 주 예수 그리스도와 비교를 하겠는가? 그러나 성경은 그 분이 우리의 믿음의 주이시며 오메가이기 때문에 그 분을 바라보라고 하신다.


  예수그리스도의 이 땅의 삶은 부끄러움 자체이다. 인간이 구더기 속에 들어가는 것 보다 더 낮아지셨다. 아마 우리 같으면 지긋지긋하고 끔찍해서 잠시도 견딜 수 없는 일이다. 거기다가 벌거벗김을 당하고 채찍 맞고 못 박히신 십자가의 형벌의 수욕이란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다. 그 분은 죄인이란 사실을 넘어 철저히 버림받은 존재, 완전히 저주받은 사람으로 취급당했다. 성황당 지나가면서 침을 뱉음 같이 그에게 침을 뱉고 꼴좋다 하면서 고개를 훽훽 돌린다. 요즘 말로 하면 ‘어이 재수없는 것’하고 침을 뱉고 고개를 돌렸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 분은 이런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았다. 십자가 건너편의 영광의 즐거움을 바라보시면서 이기셨다.


  지금 이 시대는 지도자들이 이런 수욕을 당해야 할 때인 것 같다. 목사도 장로도, 아니 대통령도 다 이런 수욕을 당해가면서 백성들을 살려내야 할 때이다. 바울도 하나님의 나라 삼층천을 본 사람이 육신으로는 만물의 찌꺼기로 취급받았다. 그는 인간의 맨 끄트머리에 선 부끄러움의 대명사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를 안다. 처절하게 부끄러운 그 분의 십자가의 도의 위력을 알고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안다. 그래서 그는 날마다 죽음의 부끄러움을 자진해서 짊어진다. 다른 영혼들을 맡아서 가슴에 끌어안고 울고 있는 종들이여! 주께서 주시는 부끄러움의 징계를 분노로 대적하지 말라. 그 분의 십자가의 도로 말미암은 대속함을 받을 일이 아직 무수하게 남았기 때문이다(욥3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