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하늘 아래의 인생과 위의 인생

새예루살렘 2008. 6. 23.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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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6월 22일 일요일, 오전 05시 41분 12초 +0900
 
하늘 아래의 인생과 위의 인생

전도서 9:1-6절


  전도서는 진정한 인생의 가치관을 제시하고 있다. 세상의 것과 하늘의 것을 뚜렷하게 대비시켜 준다. 전도서가 말하는 인생이란 무엇인가?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다. 전도서를 보면 사람의 생각과 개념이 바뀐다. 생각과 개념이 바뀌면 사주팔자가 바뀐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면 생각이 바뀐다(롬8:6절)


  전도서에는 ‘해 아래서’라는 말이 27번이나 나온다. 해 아래서는 일정한 룰(rule)에 따라 움직인다(1년 12달, 24절기, 하루 24시간) 이미 정해져 있다. 그래서 해 아래에서는 새것이 없다. 피고 지는 일이 연속이 되고, 나고 죽고 왔다 갔다 돌고 돈다. 사람들이 다 이와 같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면 헛되고 헛되다.


  창8:22절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해 아래와 땅위에 있는 인생은 이를 피할 길이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해 아래의 땅 위에 살고는 있지만 새 하늘과 새 땅의 사람으로 살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전도서 9장이 주는 교훈의 의미는 매우 크다.


  1절 “내가 마음을 다하여 이 모든 일을 궁구하여 살펴본즉 의인과 지혜자나 그들의 행하는 일이나 다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른지 미움을 받을른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 미래임이니라”


  자신이 의인이라고 한들 의인이 되고 지혜자라고 한들 지혜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다 하나님의 손에 있다’ 사랑을 받을 사람이나 미움을 받을 사람이 다 하나님의 마음과 판단에 달렸다. 그리고 그건 미래일이다. 나중에 가서 비로소 깨닫는다는 말이다.


  2절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모든 것이 일반이라 의인과 악인이며 선하고 깨끗한 자와 깨끗하지 않은 자며 제사를 드리는 자와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는 자의 결국이 일반이니 선인과 죄인이며 맹세하는 자와 맹세하기를 무서워하는 자가 일반이로다”

해 아래에 있는 인간들이 육체로 인해 당하는 것은 신 불신 간에 다 같다. 사실 이것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의 갈등이 있다. 간혹 가다가 도대체 ‘신앙이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되는가?’하는 회의와 갈등이 생길 때도 있다.


  그래서 전2:14-15절 “지혜자는 눈이 밝고 우매자는 어두움에 다니거니와 이들의 당하는 일이 일반인 줄을 내가 깨닫고 심중에 이르기를 우매자의 당한 것을 나도 당하리니 내가 어찌하여 지혜가 더 하였던고 이에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이것도 헛되도다”고 말한다.


   바울도 고전15장 19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 우리의 바라는 것이 금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자리라’고...

만약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의 영으로 부활과 생명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공급받는 생명의 능력이 없다면 과연 초대교회의 신자들이 300년 이상이나 카타콤의 생활을 이길 수 있었을까?


  3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일반인 그것은 해 아래서 모든 일 중에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 악이 가득하여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다가 후에는 죽은 자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사람의 본성이 다 악하다. 다 미쳤다. 돈, 지식, 술, 골프, 예술 등에 빠져있다. 결국 이런 것에 미쳐 살다가 죽은 자에게로 돌아간다.


  그러나 

  4절 “모든 산 자중에 참예한 자가 소망이 있음은 산개가 죽은 사자보다 나음이이라”


  ‘모든 산 자중에 참여한 자’란 하나님의 구원에 참예한 자, 영접된 자, 택함을 입은 자란 뜻이다. 산 자들 중에 있는 자들은 소망(vision)이 있다. 왜? 그리스도 안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산 자들은 과거의 사람이 아니다. 현재와 미래의 사람들이다.


  그리고

  5절 “무릇 산 자는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며 다시는 상도 받지 못하는 것은 그 이름이 잊어버린바 됨이라”


  산자는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산 자는 육체적인 죽음이 아니라 영적인 죽음, 곧 사망이 얼마나 무서운지 안다. 그러나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른다. 이성 없는 짐승과 같다. 그야말로 하나님으로부터 잊혀진 자이다. 비참한 인생이다. 


  그 다음 6절을 보라

  “그 사랑함과 미워함과 시기함이 없어진 지 오래니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에 저희가 다시는 영영히 분복이 없느니라”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과 그 분이 미워하시는 것 그리고 성령이 시기하시는 것을 알아야 회개하고 돌이키는데 이런 감각이 없으니 그리스도 안에 분복이 있을리가 만무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분복은 평강, 기쁨, 소망 이런 것들인데 이런 것이 없다면 그야말로 죽지 못해서 살아가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전도서의 결론은 이렇게 맺고 있다.

  전12:13절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이것이 인생의 기본자세이다. 다시말하면 이것 뿐이다는 말이다.


  그리고 14절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나타난 일이나 숨겨진 것이나 다 심판하신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지만 이성으로만 산다면 해 아래에 있는 모든 인생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나고 죽고 병들고 가난한 인생의 고난과 역경을 다 거친다. 잘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음식점 조리사가 로또 복권 당첨 될 수도 있고, 전문 증권 투자자가 수십억을 잃을 수도 있다. 다만 그 중에 잃는 사람은 잃고 챙기는 사람은 챙긴다.


  해 아래에서는 해와 달이 움직일 때마다 시기와 우연(찬스)가 사람들에게 교차적으로 일어난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물을 여기도 치고 저기도 친다. 이 시기와 찬스가 어디로 왔다가 어디로 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왜 사람들이 항상 깨어서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하는가?

해 아래에서는 이 때와 찬스가 교차하기 때문이다. 이 때와 찬스를 붙잡기 위해서 사람들이 불철주야 노력을 한다.


  그러나 해 아래의 것은 시기와 우연이 있지만 ‘하늘들’에는 시기와 우연이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고 항상 충만하신 분이다. 언제나 돋는 해 같이 일정하시다. 그러므로 거듭나서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성도들은 해 아래의 인생의 차원을 뛰어 넘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야 하고, 성령을 좇아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사는 연습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을 다 살고 난 다음에 깨닫지 말고,다 살기 전에 깨닫고 살아야 한다.


  그래서 전12:1절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하신다. 해 아래 아담 안에 속한 자는 ‘수고’로 살지만 하늘나라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복’으로 산다. 자아나 욕심으로 사는 사람들은 끝까지 수고로 살다가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하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복으로 사는 사람은 언제나 ‘나는 복있는 사람이다’고 하면서 살아간다.


  욕심이 있는 곳에는 말씀이 임하실 수 없다. 결국 복이 올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만 복이 담겨 있다.


  그러므로 결론은 전12:13절이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존중히 여기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깊이 생각하라. 그리고 그 분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꼭 붙들어라. 주의 말씀이 샛별처럼 떠오르고 주의 영과 생명이 때로는 비처럼 때로는 이슬처럼 내리도록 그 분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불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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