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이야기로 떠나는 우리나라
이야기로 떠나는 우리나라
한국관광공사 지음
▣ 저자 한국관광공사
우리나라의 관광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세워진 정부투자기관이다.
1962년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관광자원을 개발했으며 관광사업 연구 및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등
한국관광산업의 중심 역할을 맡아왔다.
최근 여가문화가 발달하면서 여행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가운데, 우리나라 여행에 대한 패턴도
예전과 다르게 변하고 있다.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한국관광공사는 관광업계나 지방자치 단체와의 협력을 통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또한, 전 세계에 불고 있는 한류 바람을 타고 점점 늘어나는 외국인관광객 유치를 위해 현재
세계 20개국 31개 지사와 8개 코리아플라자를 운영하면서 지역별 특성에 맞는 한국관광홍보
마케팅활동을 전개하여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매력적이고 활기찬 관광한국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다.
▣ Short Summary
제주도는 꼭 유채꽃이 필 때 가야 할까요? 경주에 가서는 모든 유적지를 다 봐야 할까요?
왜 모든 사람들이 봄에는 당연한 듯 보성 녹차밭을 찾고, 가을에는 봉평 메밀꽃밭을 찾는 걸까요?
가을의 봉평 메밀꽃이 볼거리인 건 맞지만 가을이 아니더라도, 굳이 메밀꽃이 피지 않아도
흐뭇한 달밤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같은 곳에 서서 같은 곳을 바라본다고 해서 서로가 느끼는 감동이 같다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같은 곳을 갈 때마다 다른 비경을 보고, 감동을 느끼는 건 시간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 시간만큼 우리가 달라져 있는 것입니다.
여행은 결국 ‘그곳’을 방문하는 것이 아니고 ‘현재의 우리 자신’을 만나는 과정이니까요.
이 책은 한국관광공사 홈페이지의 ‘이야기가 있는 여행’을 새롭게 엮은 책입니다.
모두가 말하는 대표적인 관광지이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다른 매력과 색다른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언제, 어느 곳을 찾더라도 아름다운 이 땅을 새롭게 발견하도록 하였고, 그곳이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여행은 무언가를 채워 올 수도 있고, 버리고 올 수도 있는 과정입니다.
새로 알 수도 있고, 잊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젠 더 이상 멀리서 여행에 대한 환상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나라를 새로 보게 되고, 새로 느끼게 될 것입니다.
여러 번 갔던 길이라도 오늘의 길은 어제와 다릅니다.
그 길을 따라가는 여행도 당연히 다릅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배우는 여행, 감동을 느꼈던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를 따라간 여행,
우리의 맛을 찾아가는 여행, 아름다운 우리 국토를 다시 둘러보는 여행. 놀며, 쉬며,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제 익숙했던 ‘그곳’이 새롭게 다가올 것입니다.
▣ 차례
머리말
역사 교과서를 따라가는 여행지_ 강화도
서울의 변하지 않는 연가, 추억 속을 걷는_ 정동길
봄바람 살랑거리는 남한강 여행_ 경기도 여주
솔잎 향기 가득한 바다 여행_ 충청남도 태안
옛이야기 속으로 낯선 이방인을 초대하는 곳_ 충청남도 부여
백성을 위한 진실한 마음이 남아 있는 명재 고택_ 충청남도 논산
이곳에서부터 여행을 논하라! 대한민국 명품 여행지_ 전라북도 전주
해와 달을 품은 바다에 만리장성을 쌓다_ 전라북도 부안
붉은 대지에서 피어오르는 감동이 가득한 곳_ 전라북도 고창
원림의 멋, 정자문화의 풍류를 따라 떠나는_ 전라남도 담양
봄과 여름의 수채화, 겨울의 수묵화를 품은 곳_ 전라남도 보성
쪽빛 바다에서 건져낸 보물섬_ 전라남도 신안
대한민국의 최남단 땅끝에서 만나는 고요함_ 전라남도 해남
다산의 마음이 통하는 길_ 전라남도 강진
끝나지 않은 무진기행_ 전라남도 순천
등대와 동백꽃을 품은 2012년의 주인공_ 전라남도 여수
슬프도록 애잔한 풍경_ 경상남도 남해
한여름 탁족을 즐기며 달을 희롱하는 여행_ 경상남도 함양
그리운 이의 가슴 같은 안개를 품은 곳_ 경상남도 합천
동양의 나폴리_ 경상남도 통영
영화의 주인공이 되는 도시_ 부산
눈부시게 밝은 봄의 도시_ 경상남도 밀양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모르는 그곳_ 경상북도 경주
걸으면 알게 되고, 알수록 정감이 넘치는 골목길 탐방_ 대구
푸른 소나무와 학이 있는 풍경_ 경상북도 청송
6백 년 역사와 전통이 깃든 양반 마을_ 경상북도 안동
하얀 사과꽃 향기가 가득한_ 경상북도 영주
하얀 가을 눈꽃이 펼쳐진 오지마을_ 경상북도 봉화
바람과 초록의 나라_ 강원도 태백
옛 선인들의 삶을 만나는 곳_ 강원도 강릉
맑은 공기 가득한 북한강 명품길_ 강원도 화천
‘뻔’하지 않게 즐기는 나만의 여행_ 제주도
옛이야기 속으로 낯선 이방인을 초대하는 곳_ 충청남도 부여
서동요는 백제 무왕이 지었다고 알려진 4구체 향가로 현존하는 향가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 노래는 용의 아들로 태어난 무왕이 고난을 극복하며 왕이 되는 과정에서 등장한다.
무왕의 어릴 적 이름은 서동이었다.
서동은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가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공주를 아내로 맞이할
궁리를 하다가 동요를 만들었다.
서동은 이 동요를 아이들에게 부르게 했는데, 내용은 선화공주가 밤에 남몰래 서동방을
안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이 소문은 즉시 대궐까지 들어가 결국 선화공주는 귀양길을 떠나게 되었다.
서동은 귀양길을 떠나는 선화공주를 아내로 맞이했다.
후에 백제의 왕이 된 무왕과 선화공주의 이야기는 바보온달과 평강공주만큼 유명한 러브스토리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찬란했던 그 시절의 영화도 없고 남아 있는 유적지도 많지 않지만 부여는
여전히 백제의 옛이야기로 여행을 다니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선화공주를 사랑한 무왕이 만든 인공호수_ 궁남지
궁남지는 왕이 고향을 떠나 향수병에 걸린 왕비를 위해 만든 연꽃으로 가득한 연못으로,
궁궐 남쪽에 있다고 해서 宮南池라 불렸다.
궁남지는 신라 안압지보다 40여 년 먼저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人工연못이다.
연못 주위에 휘휘 늘어진 버드나무의 운치를 즐기며 다리를 건너면 ‘포룡정’이란 정자에 닿는다.
7월의 이른 아침이면 이 포룡정에서 만개한 연꽃의 자태를 감상하며 그 향에 맘껏 취할 수 있다.
궁남지의 연꽃을 눈으로만 즐기지 말고 근처에 연잎밥을 맛볼 수 있는 곳을 찾아 입으로
연꽃의 향기를 느껴보면 금상첨화다.
백제의 상징인 연잎에 밥을 쪄내는 연잎밥은 왠지 백제와 어울리는 음식 같지 않은가?
백제의 아름다운 후원_ 부소산
백마강의 황포돛대를 따라가다 보면 부여의 진산이었으며, 전쟁 시에는 최후의 성곽으로
이용됐던 부소산에 닿는다.
부소산은 山이라기보다 언덕이라고 할 만큼 낮은 산으로 다부지게 뿌리를 내린 소나무와
굴참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부소산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는 백제의 마지막 날 三千 宮女가 몸을 던졌다는 낙화암이다.
그녀들이 白馬江에 몸을 던진 모습이 마치 꽃이 떨어지는 것과 같다고 해서 낙화암落花巖
이라 불렀다고 한다.
낙화암 아래에는 고란사가 있는데, 낙화암에서 몸을 던진 삼천 궁녀의 혼을 달래기 위해
세워졌다고 알려진 사찰이다.
사찰 뒤 바위에서 자라는 고란초에서 이름을 따서 고란사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곳은 백마강을 바라보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어 수려한 경관으로도 유명하지만, 마시면
한 잔에 3살이 젊어진다는 약수로도 유명하다.
부소산 주변으로 흐르는 백마강과 운치를 더해주는 절벽을 흔히 병풍에 비유하는데 강을 따라
병풍 속 그림을 감상하는 풍류가 그만이다.
그래서였는지 백제의 왕들이 그 풍경에 반해서 갈 때마다 노래하고 춤을 추면서 유희를
즐겼다 하여 ‘대왕포大王浦’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곳에서부터 여행을 논하라! 대한민국 명품 여행지_ 전라북도 전주
도대체 어디서부터 여행을 시작해야 할지 망설일 정도로 전라도는 작은 소도시부터 대도시까지
모두 맛과 멋을 즐길 수 있는 일품 여행지다.
어딜 가나 경치가 아름다울 뿐 아니라, 들어야 하고 배워야 할 것들이 가득하다.
전라도의 어느 한 곳을 콕 집어서 이야기해야 한다면 바로 전주일 것이다.
全州는 콩나물국밥, 전주비빔밥, 민물매운탕, 전통술 등 누구나 인정하는 맛의 고장이다.
동시에 조선시대부터 책을 찍어냈을 만큼 文學이 발달했으며, 옹기종기 모여 있는 한옥韓屋의
정겨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신명 나게 한판 놀아보는 재미_ 전주 한옥마을
전라북도 전주시에 자리 잡은 한옥마을은 전주시가 지난 1999년부터 전통문화특구로 지정해 정성을 기울여 온 곳이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한 경기전과 전주천을 포함한 교동, 풍남동 일대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한옥들이 멋스러운 곳, 천천히 걸어야 진가를 알 수 있는 도심형 슬로시티다. 전주 한옥마을은 언뜻 보기에 깨끗하고 세련돼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의 한옥들은 대부분 1930년대에 지어졌다. 이 시기에 일본인들이 양곡 수송을 위해 성곽을 해체하면서 전주부성이 사라지고 전주객사가 있는 중앙동까지 세력을 넓혀오자 향교가 있는 교동과 풍남동에 한옥으로 저지선을 만들었다고 한다. 한옥마을이 민족적 자긍심의 발로였던 것이다.
한옥이 다른 주택과 다른 점은 마당이 있다는 것이다. 주택에 마당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천양지차다. 마당은 집과 외부를 구분 짓는 경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부도 될 수 있고, 외부도 될 수 있으며 밖과 안을 연결하는 장소다. 전주 한옥마을의 마당은 이런 의미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이곳의 마당은 ‘판’을 벌이는 곳이며, 문이 있으나 항상 열린 공간이다. 한정식집 마당에서도 서까래와 주춧돌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판소리와 산조가락이 연주된다.
전주 한옥마을의 마당은 놀이문화가 펼쳐지는 현장이다. 공연하는 이와 구경하는 이가 구별 없이 서로 추임새를 넣으며 흥을 나누는 놀이판이다. 한옥마을 마당에서 판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은 1999년 전주의 다문(茶門)이라는 전통찻집의 작은 마당에서 풍류를 알고 노래 꽤나 한다는 재주 많은 이들이 공연을 열었을 때부터였다. 이를 계기로 전주의 자랑인 ‘산조 예술제’가 시작되었다.
전주 한옥마을을 대표하는 한옥_ 학인당
학인당은 조선 고종 때 승훈랑 영릉참봉에 임명된 인재 백낙중의 옛집이다.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은 이 집은 솟을대문부터 보통 한옥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케 한다. 솟을대문에는 3대에 걸쳐 효행을 실천한 백낙중을 기리기 위해서 당시의 명필 김돈회가 쓴 ‘백낙중지려(白樂中之閭)’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것만 봐도 이 집에 대한 후손들의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학인당은 조선왕조가 기울어질 무렵에 지어져 굴곡 깊은 역사를 품고 있다. 해방 후에는 한국독립당 전라북도당 창당을 위해 전주를 찾은 백범 김구 선생과 정부 요인의 숙소로 이용됐고, 한국전쟁 때는 공산당 전라북도당 위원장의 전용 숙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한강 이남에서 민간인이 살던 집 중 가장 화려한 고택이라고 불리는 학인당은 궁에서만 사용되었다던 호박주춧돌과 두리기둥으로 지어진 99칸 대저택이다. 솟을대문을 지나 이 집의 본채에 들어서면 잘 가꿔진 정원이 손님을 맞는다. 이 정원에는 두레박이 아니라 직접 돌계단으로 내려가서 물을 뜨는 특이한 우물이 있는데, 한여름에도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어서 지금도 여름에 과일을 담가놓는 용도로 사용된다고 한다. 학인당은 당대에도 그랬고 지금도 남한 최고의 고택이나 이 집의 문턱을 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하룻밤 묵기를 청하는 손님에게 언제나 친절하다. 이 외에도 전주에는 한옥 여관을 비롯해 동락원, 한옥생활 체험관 등 한옥 숙소가 많다. 한옥에서 달밤의 풀벌레소리와 바람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해보자.
봄과 여름의 수채화, 겨울의 수묵화를 품은 곳_ 전라남도 보성
은하수를 길어 차를 음미했다던 진각국사 혜심의 차 사랑은 남달랐다. 진각국사가 즐겨 마셨다는 작설차는 곡우와 입하 사이에 차나무의 새싹을 따서 만든 것으로 잎의 끝 모양이 참새의 혀와 닮았다고 하여 작설(雀舌)차라 부르는데, 고려 말 이제현이 “송광화상이 차를 보내준 고마움에 대해 붓 가는 대로 적어 장하에 보냄.”이라는 차시(茶詩)에 처음 기록되었다. 이 작설차의 향과 맛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봄날의 보성을 찾으면 된다.
나뭇가지마다 핀 봄꽃 축제_ 대원사 벚꽃길
광주에서 화순을 거쳐 보성에 들어서면 대원사 벚꽃이 봄맞이 객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대원사의 벚나무는 일명 왕벚나무로 우리가 보던 벚나무와 조금 다르다. 가지가 옆으로 넓게 퍼진 것이 아니라 하늘로 뻗어 날씬한 자태를 뽐내며 하얗고 풍성하게 벚꽃이 피어 멀리서 보면 나뭇가지마다 눈꽃이 내려앉은 듯한 모습이 장관이다.
대원사의 벚꽃길은 구불구불 아기자기 이어진 좁은 도로여서 차로 달리며 감상하기보다는 천천히 걸어야 벚꽃을 제대로 볼 수 있다. 행여 날씨가 궂어 봄비가 내리는 날이면 비를 맞아 떨어지는 벚꽃길을 걸을 수 있으니 운치가 그만이다. 5킬로미터 정도에 걸친 대원사 벚꽃길을 통과하면 대원사 일주문과 ‘우리는 한꽃’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일화문에 도착한다. 일화문을 통과하여 대원사 경내로 들어가면 연꽃생태공원이 있는데, 세계 여러 나라에서 모은 연꽃과 수련의 종류가 108여 종이 있다.
봄, 여름, 겨울 삼색의 매력_ 대한다원
보성하면 모든 이들이 맨 처음 떠올리는 것은 드넓게 펼쳐진 푸른 차밭이다. 무려 약 330만 평의 차밭이 펼쳐진 보성은 명실상부 국내 최대의 차 산지다. 이곳은 범접할 수 없는 재배지의 면모를 자랑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여행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그 무언가가 있다. 바로 안개다. 밤새 한껏 부풀어 오른 안개가 산 중턱까지 차밭에 내려앉은 광경은 여타의 운무에 비할 바가 아니다.
보성에는 대형 다원이 여러 개가 있는데, 그중 우리가 드라마나 CF에서 자주 보았던 곳은 대한다원이다. 계단식 고랑의 끝없는 물결, 한 계단 한 계단 밟고 오를 때마다 눈이 부신 초록빛 바다는 더욱 푸르러진다. 차밭 전망대로 가는 108계단을 모두 오를 필요도 없이 중간에 멈춰서 숨을 고르며 둘러봐도 저절로 감탄사가 나오는 곳, 바로 보성 차밭이다.
수묵화의 단아함_ 겨울의 차밭
초록을 빼고는 도저히 상상되지 않는 보성의 차밭을 눈이 내리는 한겨울에 가보자. 숨이 막히고 폐 속 깊이 풀빛으로 염색될 것 같은 초록은 없지만,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설경이 펼쳐져 있다. 보성에서 흔히 말하는 소리길, 서편제의 감동을 기대하는 이들은 반드시 겨울의 보성을 찾아야 한다. 한때 전국을 판소리 열풍으로 몰아넣었던 영화 <서편제>의 감동은 초록의 녹차밭이 아니라 시린 찬바람과 한없는 눈길로 이어진 겨울의 보성을 봐야지만 그 여운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 감동을 백 배 느끼고 싶다면 소리꾼들이 고개를 넘다 소리판을 펼쳤다 해서 소리고개라고 불리는 봇재에 올라야 한다. 봄과 여름에 봇재에서 내려다본 차밭이 녹색 바다라면, 봇재에서 내려다본 겨울 차밭은 한 폭의 수묵화요, 가슴 설레는 크리스마스카드다.
쪽빛 바다에서 건져낸 보물섬_ 전라남도 신안
시간도 천천히 흐르는 느림의 미학을 찾아서_ 신안 증도 염전
전라남도 신안군은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1천 개가 넘는 섬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다도해의 볼거리가 풍성하며 섬들이 저마다 장관을 뽐내고 있다. 그중 특히 중도는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에 지정되어 떠오르는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슬로시티란 인구 5만 명 이하의 소도시로, 고유의 문화유산을 지키고 자연친화적인 농법을 사용하며, 삶의 방식이 ‘속도’가 아닌 ‘사람’이 중심인 곳을 말한다.
중도에 처음 방문한 이들이 맨 처음 보는 것은 쪽빛 하늘 아래 끝없이 펼쳐진 무채색 갯벌이다. 이 갯벌을 가로질러 우전해수욕장과 중동리를 연결하는 ‘짱뚱어다리’가 유일한 건축물이다. 보는 순간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광경을 기대하는 이들에게는 당황스러울지 몰라도, 느림의 미학을 곱씹으며 갯벌을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는 시간이 갈수록 마음에 남는 곳이다. 바다와 갯벌이 많은 증도 방문의 가장 적기는 여름이겠으나 가을에 만나는 증도도 아주 색다르다. 가을 증도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붉은 색으로 물든다. 바로 함초 때문이다. 마치 칠면조처럼 색이 변한다 하여 함초라 불리는 이 식물은 가을이 되면 줄기와 몸 전체가 붉은빛이 도는 자주색을 띤다. 지금까지 산속에 있는 오색 단풍을 보아왔다면, 이번에는 ‘바다의 단풍’을 감상하는 건 어떨까?
뭍이 그리운 아가씨의 섬_ 흑산도
신안은 1,004개의 섬으로 이루어졌다 해서 ‘천사의 섬’으로 불린다. 제각기 다른 매력으로 관광객을 사로잡는 신안의 섬들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단연 흑산도와 홍도다. 산과 바다가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인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흑산도는 과거 천주교를 전파하다 유배된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과 구한말 강화도조약에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린 최익현의 유배지였다. 그리고 그 유명한 노래 ‘흑산도 아가씨’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목포에서도 페리호를 타고 2시간 정도 달려야 도착하는 흑산도에서는 육지가 보이지 않는다. 고작해야 아주 맑은 날 가까이에 섬만 볼 수 있을 뿐, 평상시에 보이는 것은 온통 바다뿐이다. 그러나 상라산 전망대에 올라 동해의 장쾌함과 서해의 애잔함, 남해의 잔잔함을 한곳에 모아놓은 듯한 흑산도 바다의 장관을 보고 있으면 뭍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게 된다.
쪽빛 바다의 붉은 보석_ 홍도
연간 20만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찾는다는 홍도. 홍도는 흑산도에서도 배를 타고 더 들어가는데, 흑산도 선착장에서 30분이면 닿는 섬이지만 파도가 높거나 태풍이 불면 홍도까지는 갈 수 없다. 때문에 홍도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돌아간 이가 태반이다. 해질녘 섬 전체가 붉게 빛난다는 홍도에서 유람선을 타고 섬 일주를 하다 보면, 작은 배가 지나다닐 수 있는 남문바위, 독립문을 닮았다는 독립문바위, 홍도를 수호한다는 거북바위 등을 볼 수 있는데 모두 하나의 예술품처럼 아름답다.
동양의 나폴리_ 경상남도 통영
통영은 쪽빛 바다가 빼어나게 아름다운 곳이다. 사천, 남해를 거쳐 여수에 이르는 아름다운 바닷길, 한려수도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250여 개의 섬을 품은 바닷길도 아름답지만 통영을 둘러싼 바다를 보며 걷는 산책길이 백미다. 이 길을 걷다 보면 통영이 지중해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나폴리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통영의 새벽을 즐기는 방법_ 서호시장, 바닷가 산책로
통영을 찾은 이유가 식도락이 아니라면 새벽의 서호시장을 찾아보자. 또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물씬 나는 새벽 서호시장은 여객터미널로 향하는 객들의 바쁜 움직임과 만선의 배에서 생선을 나르는 어부, 시장상인의 바쁜 움직임으로 생동감이 넘친다. 팔딱팔딱 뛰는 생선을 사려는 상인들의 새벽 경매는 부지런한 여행객들만이 볼 수 있는 큰 즐거움이다. 서호시장에서는 이 지방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는 다찌집을 찾아보자. 다찌집에서는 술과 안주를 따로 시키는 것이 아니라 술을 주문하면 그에 맞춰 싱싱한 해산물 안주가 따라나온다.
다찌집에서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면 서둘러 바닷가 산책로를 찾아가보자. 도남동에서 통영 공설해수욕장, 바닷가 절벽과 동굴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왕복으로 두어 시간 걷고 나면 어느새 아침이 밝아온다. 이 산책로의 정식 명칭은 원래 수륙-일운 해안도로지만 수륙해안도로, 삼칭이해안도로라고도 부른다. 아름다운 이 길을 걸으며 코발트빛 바다를 느껴보자.
한려수도를 관광엽서에 담다_ 미륵산
통영 시내에서 통영대교나 충무교를 건너면 닿는 섬, 미륵도. 새해를 맞아 해돋이 관광객에게 이름이 꽤 알려진 미륵산이 위치한 곳이다. 통영 사람이나 관광객이나 통영에서 한려수도와 일출을 보기 위해 미륵산을 오르는데, 그 이유는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 통영항이 한눈에 들어오는 조망이 일품이기 때문이다. 한려수도 풍경을 담은 관광엽서 대부분을 이곳에서 찍었다고 한다.
이른 아침, 한 폭의 산수화를 느끼고 싶다면 미륵산의 전망대를 권한다. 운이 좋아 날이 맑으면 일본 대마도, 지리산 천왕봉, 여수 돌산도까지 볼 수 있다. 그림 같은 풍경을 등지고 하산할 때는 도보를 권한다. 서남쪽으로 한려수도 못지않은 육지의 비경이 여행객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인데, 바로 미륵산 자락을 끼고 층층이 올라붙은 다랭이 논이다. 햇빛을 받아 아침, 저녁 다른 색으로 빛나는 다랭이 논은 바다와는 또 다른 아름다운 모습이다.
통영 앞바다를 품은 골목_ 동피랑
강구안을 끼고 있는 남망산 조각공원과 마주한 산동네 동피랑은 동쪽 벼랑 끝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설치한 통제영의 동포루가 있던 자리로, 통영시가 복원을 위해 마을을 철거하기로 했었다. 얼마만큼의 보상비만 받고 외지로 떠나게 된 주민들의 현실을 안타까워한 한 시민단체가 동피랑 벽화공모전을 열었고,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미술학도들은 이 산동네 벽을 캔버스 삼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벽화들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동피랑이 벽화로 유명해지면서 관광지가 되었지만, 골목과 벽화가 전부는 아니다. 골목을 누비며 벽화를 감상하다 보면 골목 사이사이로 푸르른 통영 바다가 들어온다. 바다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남의 집 앞마당에 발을 디디게 된다.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모르는 그곳_ 경상북도 경주
경주는 그야말로 뚜껑 없는 박물관이다. 오죽하면 경주에서 집을 지을 때는 땅을 파다 무언가 나오면 그대로 덮으라는 말이 있을까. 사방이 문화재이고 천지가 보물인 경주에서 한꺼번에 모든 것을 보고 깊은 감동을 느끼겠다고 하는 건 너무 과한 욕심이다. 자칫했다간 뭘 보고 왔는지도 모른 채 발도장 찍은 기억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소리_ 성덕대왕신종
국보 제29호, 우리가 흔히 에밀레종이라고 부르는 성덕대왕신종은 몇 킬로미터 밖까지 청아한 소리가 들리는 미스터리한 종으로 유명하다. 성덕대왕신종의 양 측면에 연꽃무늬 당좌가 새겨져 있는데 반드시 이곳을 쳐야만 장중한 소리가 난다고 한다. 높이 3.75미터, 입지름 2.27미터, 무게 약 19톤이나 되는 이 종을 만들려면 엄청난 양의 주물이 필요하며, 이 많은 양의 주물을 한꺼번에 넣을 때 자칫하면 기포가 생겨 종이 쉽게 까져버린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 크렘린 궁 안에 있는 황제의 종은 무게가 무려 2백 톤이 넘지만 한 번 쳐보지도 못하고 깨진 채 전시되어 있다. 현대 과학으로도 성덕대왕신종의 크기와 무게를 가진 종을 기포 없이 제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하는데, 1천 3백여 년 전에 엄청난 양의 주물을 사용해 기포 없이 종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미스터리이다.
원래 매년 12월 31일 서울 보신각과 함께 제야의 종소리를 냈으나 1992년부터 타종이 중단되었다. 그러다 2001년 10월 진동 및 음향 신호의 측정을 기록하고 주파수 분석을 통해 종의 상태를 진단하기 위해서 18번 타종식을 거행했고 2001년과 2003년 개천절에도 타종되었으나, 2004년에 성덕대왕신종의 타종은 영구히 중단되었다. 성덕대왕신종의 안전과 유물로서의 가치를 연장하기 위한 이유였다. 국립경주박물관 측의 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영원히 성덕대왕신종의 타종 소리는 들을 수 없지만, 박물관을 방문하면 매 시간 정시에 녹음된 소리는 들을 수 있다.
신라 문화의 결정체이자 세계적인 문화유산_ 석굴암 석굴
『삼국유사』의 기록을 보면 석굴암의 원래 이름은 석불사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이후 불국사에 예속되었다가 1910년경부터 일본인들이 석굴암이라 부른 명칭이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이다. 즉 석굴암이란 이름 자체가 일제의 잔재이다.
석굴암 석굴은 원래 사각형의 전실과 원형의 주실, 그리고 이 두 공간을 연결시키는 비도(扉道)로 구성되어 있는데, 주실 입구에 세워진 팔각형 돌기둥이 석굴 내 두 공간을 구분하고 있다. 석굴암의 예술 경지의 궁극은 주실 중앙에 있는 본존불상이다. 많은 이들이 이 불상을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석조 조각이라 말한다. 16척 크기의 본존불상은 8각 원형대좌 위에 결가부좌로 앉아 있다. 위엄 있는 얼굴, 반쯤 감은 듯 뜬 눈, 떡 벌어진 어깨와 힘찬 자세의 이 불상은 인체의 곡선과 아름다움을 나타냈으나 여려 보이지 않고 기품이 있다.
산자락에 흐르는 반촌의 향기_ 양동마을
조선왕조 5백년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곳, 양동마을은 안동 하회마을, 칠곡 매원마을과 더불어 영남의 3대 반촌(班村)이라 일컫는 곳이다. 반촌이란 양반들이 모여 사는 마을로, 대체로 읍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며 마을 입구가 좁고 들어갈수록 넓어지는 형태로 되어 있다. 그러나 양동마을의 형태는 조금 다르게, 숲과 숲 사이에 마을이 들어선 듯한 형태를 취한다. 마을의 배경이자 중심에 서 있는 설창산 문장봉에서 산등성이가 뻗어내려 4줄기로 갈라진 등선과 골짜기가 ‘물(勿)자’형을 이루고 있는데 이 지세를 따라 집들이 들어섰다. 지대가 높아 전망이 좋은 곳일수록 권세 높은 양반들이 집터를 잡았다. 양동마을은 반촌이면서 인근에서 유명한 부촌이기도 했다. 한때 이 일대에 펼쳐진 안강평야가 모두 양동마을 사람들의 소유라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였다.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양동마을에는 오늘도 고택 안을 기웃거리며 탐방의 욕구가 흘러넘치는 관광객들로 북적댄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이곳은 민속마을이지만 동시에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다. 내가 보고 있는 이 집은 누군가가 살고 있는 집이고, 경주 속에 살아 있는 조선의 역사라는 사실을 말이다.
바람과 초록의 나라_ 강원도 태백
전라남도 보성 산기슭을 따라 굽이굽이 물결치며 풍기는 진한 녹음을 다시 맛보고 싶은 여행객에게는 녹차밭과 같으나 다른 감동을 주는 태백의 귀네미마을을 추천한다. 귀네미마을은 원래 광동리, 숙암리, 조탄리 등에 살던 이들이 80년대 후반 광동댐이 들어서면서 고향을 떠나 터를 잡은 곳이다. 물에 잠긴 고향을 등지고 태백 매봉산 기슭에 도착한 수몰민들은 산을 깎고 땅을 갈아 마을을 일궜다. 이들이 어떻게든 살아보고자 배추씨를 뿌린 것이 귀네미마을 고랭지 배추밭의 시작이다.
또 다른 초록 물결_ 귀네미마을
여느 작물이 다 그렇겠지만 1년에 한 번 수확하는 배추를 경작하는 건 도박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나 해발 약 1천 미터의 귀네미마을은 가뭄을 몰랐다. 동해에서 건너온 차가운 바람과 산 밑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공기가 만나 1년에 3분의 1은 안개비가 내리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어떤 이는 그림엽서 같은 풍경을 보지만, 어떤 이는 삶의 준엄함을 본다. 이곳이 여타의 관광지와 사뭇 다른 느낌을 주는 건, 바로 농민의 흙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귀네미마을에서는 9월이면 벌써 서늘해져서 다른 농작물을 키울 수 없다. 8월에 배추가 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백두대간에 걸쳐 있는 귀네미마을의 가장 높은 능선에 오르면 세찬 바람이 불어오는데, 바람의 언덕이라 부르는 이곳에는 거대한 풍력 발전기가 돌아가고 있다. 푸른 하늘 아래 흔들리는 배추밭과 풍력발전기는 상당히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그 모습이 묘하게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다만 이곳은 고랭지 배추밭이므로 광활하게 펼쳐진 배추밭을 보고 싶다면 늦어도 8월까지는 귀네미마을을 찾아야 한다. 배추는 4~5월에 파종하여 7~8월에 수확하기 때문에 여름이 지나면 이 장관을 놓치고 만다.
희귀 야생화와 해바라기의 향연_ 태백고원자생식물원
8월의 태백에는 볼거리가 많다. 매봉산 진입로가 시작되는 삼수령 아래에서 매년 8월이 되면 황금빛 잔치가 열린다. 아홉 마리의 소가 배불리 먹고 누워 있는 모양이라고 해서 구와우마을이라고 부르는 ‘태백고원자생식물원’이 바로 그곳이다. 해발 8~9백 미터에 위치한 고원자생식물원에서는 사라져가는 희귀 야생화들을 볼 수 있고 8월이 되면 해바라기축제가 열린다. 이곳의 해바라기는 높은 곳에 위치한 탓에 고지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이곳도 귀네미마을처럼 수시로 짙은 안개가 밀려오고 가랑비가 내리곤 한다. 푸른 하늘 밑에 황금빛 물결처럼 넘실대는 해바라기도 인상적이지만, 부슬부슬 가랑비를 맞으며 서 있는 해바라기는 또 다른 맛이다.
태백의 정기가 흐르는 곳_ 천제단
봄에는 야생화를 보기 위해, 여름에는 고랭지 배추밭을 보기 위해, 가을에는 단풍을 보기 위해 태백을 찾지만 겨울의 태백 여행만큼 환상적이기는 힘들 것이다. 특히 태백산에서 맞이하는 새해의 일출은 특별하다. 일출을 굳이 태백에서 봐야 하는 이유는 바로 단군신화의 천제단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의 일출은 다른 곳보다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태백산의 천제단은 쉽게 오를 수 없는 곳이며, 일출을 보기 위해 이곳을 오른다는 건 야간 산행을 의미하는 것이니 이만한 정성도 없을 듯하다. 이곳에서 일출을 보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뻔’하지 않게 즐기는 나만의 여행_ 제주도
제주도는 유채꽃과 푸른 바다와 그 이국적인 풍경이 아름다운, 대한민국 최고의 여행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국적인 풍경에 대한 감탄사가 얼마나 오래갈까? 꼭 한번 가볼 제주도라면 당연히 봐야 할 관광지와 산, 섬도 좋지만 남들과 조금 다른 계획을 세워보는 것은 어떨까?
제주도에서의 나만의 추억_ 작가의 산책길
제주도 서귀포시에는 ‘작가의 산책길’이 있다. 이 길은 이중섭 미술관(이중섭 거주지)-동아리 창작공간-기당미술관-칠십리 시공원-자구리해안-서복전시관-정방폭포-소라의섬-소암기념관으로 이어진다. 작가의 산책길은 천재 화가 이중섭과 한국 서예계의 거목인 소암 현중화, 폭풍의 화가라 불리는 변시지 등 제주와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작가들, 서귀포시를 사랑한 작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길이다. 총 4.9킬로미터에 이르는 이 코스는 3시간 30분 정도 걸리는데, 혼자 돌아보는 것도 좋지만 장소마다 해설사의 친절하고 재미있는 설명이 있으니 이를 참고해도 좋다. 어렵거나 접할 시간이 없어서 점점 멀게만 느껴졌던 작품들을 천천히 걸으며 훑어보는 것도 여행이 될 수 있다.
작가의 산책길은 이중섭 미술관에서부터 시작한다. 역동적이며 폭발적인 내면세계를 잘 표현했던 천재 화가 이중섭은 삶이 작품이고 창작이 곧 삶의 원동력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예술가다. 하고픈 이야기가 많고 가슴에 맺힌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 간절하고, 더 강렬하게 표현하기 마련이다. 이중섭 미술관에서는 그의 진품을 직접 감상할 수 있다. 이중섭 화가의 작품을 감상하고 다시 작가의 산책길에 올라 30여 분을 가다 보면 기당미술관에 도착한다. 기당미술관은 제주가 고향인 재일교포사업가 기당 강구범에 의해 건립되어 서귀포시에 기증되었으며 1987년 7월 1일 개관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시립미술관이다. 기당미술관의 상설전시실에는 ‘폭풍의 화가’로 잘 알려진, 제주가 낳은 세계적인 화가 변시지의 작품과 근대서예가 강용범의 작품이 연중 전시되고 있다.
기당미술관 건너편에는 칠십리 시공원이 자리 잡고 있다. 칠십리 시공원은 천지연폭포와 한라산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가 있을 뿐만 아니라 공원 곳곳에 시비가 세워져 있어 그림 같은 제주의 풍경과 어울리는 시를 감상하며 여유롭게 산책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공원을 천천히 둘러보며 마음에 드는 시를 고운 햇살을 즐기며 곱씹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공원을 돌며 시를 감상하다 보면 작가가 아니지만 제주도의 파도 소리에 맞춰 누군가에게 편지를 띄울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