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축복에 익숙해 져라

새예루살렘 2009. 6. 4.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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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에 익숙해 져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찌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민6:27절)


   축복의 대명사는 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은혜 받았네 축복 받았네’하는 말들이 낯간지러운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목사가 축도하는 것조차 시비를 거는 어지러운 무리들이 생겨났습니다. 철부지들입니다. 물론 자신이 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고후13:13)을 받아 누릴 자격지심이 없어서겠지요. 그러나 축도를 이용해서 자신이 온 세상을 좌지우지할 것처럼 폼을 잡는 분들은 좀 거북하긴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을 위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주의 백성에게 축복하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그 복을 주십니다.


   오래 전에 축도할 때 마다 ‘머리 머리’ 위라는 말을 많이 하는 목사에게 ‘목사들이 머리 위만 축복하니 그 복이 그들의 것이 안 되고 아마 머리 위에 뱅뱅 돌기만 하는 가 보다’ 농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은 복이 심령에 가득해야 합니다. 신앙이 어릴 때는 누가 복을 준다고 하면 오히려 민망하여 화들짝 놀라고 손사래를 칠 정도입니다. 아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 그 복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깊은 구원의 은혜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나면 어린아이가 아버지 앞에 징징거리며 요구하듯 하나님께 복을 구하게 됩니다. 예컨대 아버지 앞에서 멀뚱하게 서서 ‘주면 받고 안 주면 할 수 없지 뭐’하는 아들은 그 아버지가 매우 난감해 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주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베푸시고, 성령으로 붙잡으시는 복, 그리스도의 얼굴에 비취는 영광의 빛을 우리 심령에 비추는 놀라운 은혜의 복, 잔잔한 미소로 바라보시는 그 분과 사귐으로 얻는 평강의 복을 왜 사모하지 않는지... 성경의 위인들은 다 복을 사모하고 남을 축복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심지어 아브라함은 그를 축복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축복하고 그를 저주하는 사람을 저주하기까지 한 복의 근원이었습니다(창12:2-3) 아브라함이 주의 이름 안에서 남을 축복할 수 있음은 당연지사입니다. 복을 받아 가진 사람은 그 복으로 남을 축복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얍복강 이전에는 자신의 힘과 수고로 인생을 꾸렸습니다. 그러나 얍복강 사건부터 ‘축복해 주세요’ 하고 바짝 달라붙어 하나님께 복을 빌었습니다. 그리고 남을 축복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윗 또한 하나님께 복을 빈 사람입니다(삼하7:29) 그리고 백성을 축복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령한 복을 가진 사람이기에 교회들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을찌어다’하고 복을 선포했습니다. 축복입니다. 우리는 다 복을 받고 축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하나님의 복을 받아 남을 축복하는 일을 어색하게 생각마세요. 그러면 저부터 “회원 여러분, 주의 이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복으로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