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이 잘 못된 가치관을 가진 은행 지점장인 자신의 사위를 보고 '자네 참말로 고생 길게 하겠네'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크게 웃은 적이 있다. 실제로 그 사위는 지금 외국에 나와 고생을 길게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상상 외로 고생을 길게 할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신앙의 주장 중에 몇 개만 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1. 예수그리스도의 성육신(first coming)을 시인하기만 하면 다 하나님의 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은 사단이 가장 먼저 알아보았다(마4:3) 귀신들도 예수그리스도의 권위를 인정한다(눅8:29) 베드로는 성령이 임하시기 전에도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고백을 했다(마16:16) 그러나 그는 돌아서자마자 헛소리를 하는 바람에 주님으로부터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는 소리를 들었다. 만약 그 순간 베드로가 구원을 받았다면 ‘사단’이라는 소리를 주님으로부터 들었을까?
단언하건대 구원의 주이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임하시지 않고는 구원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구원의 주와 따로 떨어져 있는 사람이 구원 운운한다는 것은 나무 위에 올라가서 고기를 잡는 것 만큼이나 우스운 일이다. 그리스도인이 세례를 받는 목적은 죽은 자 가운데에 있던 자들이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사신 것을 믿고 시인하고 확정을 받는 사건이다. 그 분의 다시 죽으심과 다시 사심에 연합이 되지 않고는 결코 구원이라는 말을 떳떳하게 입 밖에 낼 수가 없다.
2. 그리스도가 육신을 입고 온 사실을 아는 것을 ‘진리’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진리란 하나님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는 원리이다. 하나님과 인간을 하나 되게 하는 말씀이다. 그래서 진리는 예수그리스도 자체이시며 이를 알게 하시는 분이 바로 보혜사 진리의 성령이시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가 육체로 오신 것을 아는 지식 정도를 가지고 진리라고 말하면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예수만 믿는다고 하면 진리라는 말을 함부로 쓰는 것을 본다. 진리를 아는 사람은 거룩을 알고, 거룩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알고,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사람은 온전함을 알아 남을 사랑하는데 이른다. 그러므로 진리 운운하면서 사랑의 영이신 하나님의 사랑이 그에게 나타나지 않음은 진리라고 하는 그 말 자체가 거짓이다.
3. 성령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비밀은 예수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신다는 사실이다. 성령이 아니고는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 수 없다. 특히나 그 분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사실은 오직 보혜사 성령만이 알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신다(요14:26) 그 기름부음이 우리가 아들 안과 아버지 안에 있음을 알게 하신다(요일2:27)
성령의 외적 역사는 이적과 기사 자체로 하나님의 임재와 그 능력을 나타내신다. 예수그리스도가 행하시는 모든 표적은 바로 성령의 역사이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자체는 아직 구원이 아니며 영생이 아니다. 구원은 예수그리스도가 그 안에 계시므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요일5:12) 우리 안에 영생이신 그리스도가 계심을 알게 하는 일과 그의 형상을 이루어 그 영광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나아가게 하는 것이 성령의 사역의 정점이다. 만약 이를 알지 못하고 성령을 통해서 뭘 안다고 말하는 것은 그저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4. 예수그리스도가 육신을 입고 온 그 사실을 믿는 것이 능력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참으로 한심한 작태이다. 겨우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라는 기초적인 복음을 받아 일단 그 분의 이미지를 들은 대로 받아들이긴 했으나 그 분의 부활과 생명의 능력이 자신 안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왜? 자신 안에 계시는 그 분을 안 믿어드리므로 그 분이 역사를 하지 못하신다. 하나님은 믿음만큼 역사하신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에 귀를 기울여 받아들이고 믿는 믿음을 견고하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 믿음에 따라 하나님의 대접이 다르기 때문이다.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를 믿는 것이 능력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감동의 추억에 대한 여운은 길게 꼬리를 잇고 있지만 지금 자신 안에서 사망과 음부를 이기는 생명의 능력을 엿볼 수 없다. 역사적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를 믿음 같이 그 분이 우리 안에 임마누엘 하신 사실도 믿어야 온전한 믿음이 된다. 그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 곧 하나님의 아들의 영이 우리 안에 계시므로 그 분의 생명의 능력과 지혜는 우리 안에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그리스도가 자신 안에 나타나도록 하기 위해 날마다 십자가를 진다.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형상을 부여받는 방법이며 제자가 되어가며 그 분의 능력을 나타내는 오직 유일한 비결이다.
이로 보건대 육신적으로 오신 예수를 시인하면 다 하나님께 속한 영이라고 경솔하게 말해서는 안 된다. 또 육신의 예수를 아는 것을 진리의 지식의 전부로 아는 어린 신앙도 끝내 용납할 수 없다. 더군다나 성령 운운하면서 자신 안에 임하신 성령과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는 영생의 능력, 곧 하나님의 자녀의 자격인 사랑에너지를 결코 밖으로 나타낼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평생 전투적인 자세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옳다 그러다만 주장하다가 진짜 고생 스런 신앙을 아주 길게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