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주가 쓰기겠다고 하라

새예루살렘 2009. 3. 12.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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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3월 11일 수요일, 오전 00시 29분 55초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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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쓰시겠다고 하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리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거기 섰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가로되 나귀새끼를 풀어 무엇하려하느냐 하매 제자들이 예수의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 지라”(막11:3-6절)


    예수님이 애꿎은 무화과나무를 말씀으로 말라 죽인 일을 두고 트집을 잡기도 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만왕의 왕 되심을 싫어하는 죄성에서 나온 행동입니다. 박애주의적인 관점에서 주님을 보기 때문에 예수님이 어떻게 말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말라 죽일 수 있느냐 항변합니다. 그렇다면 생면 부지한 사람의 나귀새끼를 제자들을 시켜서 끌고 오라고 하심은  말하자면 불법으로 남의 재산을 탈취하는 일입니다.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기도에 대한 가르침을 담은 막11장에 이 두 가지 사건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사건을 종합해서 주님이 나중에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믿음을 가져라’(막11:22)고 말씀하시고 ‘마음에 의심치 않고 그대로 되리라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23-24절)는 기도에 대해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 ‘아! 기도는 말로 간절히 구하는 것만이 아니구나 마음에 확신이 오는대로 선언하는 것도 기도이구나’하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주님이 이를 시범을 보이셨습니다. ‘나귀를 끌로 오너라, 이제부터 사람들이 이 무화과나무의 열매를 먹지 못하리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걸로 그대로 결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기도가 한편에는 너무 무모하고, 다른 한편에는 남의 집에 꾸러 가는 듯 너무 자신이 없어 보입니다. 얼마 전에 어떤 분에게 마지막 남은 부모의 재산 중에 ‘그걸 주님이 쓰신다고 형제들에게 말씀하세요’라고 권한 적이 있습니다. 그 집안을 잘 알고 있어 도저히 그 땅은 그 분에게 상속될 가능이 없었습니다. 다만 내가 하나님이 주신 감동으로 그렇게 말을 하라고 했을 뿐입니다. 근데 근 일 년이 지난 후에 그의 형제 중에서 연락이 오기를 그 분의 이름으로 이미 상속을 끝냈다고 하더랍니다. 무모하게 함부로 남발할 사건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허비할 재산을 하나님께 돌려야겠다는 강한 믿음으로 말했을 뿐인데 주께서 그 일을 성취하셨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바로 사유재산이 인정되는 철저한 개인주의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귀는 그 주인의 귀중한 재산입니다. 그런 사유재산을 주께 쓰시겠다고 하라는 한 마디로 그 주인이 아무 말 하지 않고 ‘그럼 그렇게 하시오’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어쩜 강탈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차라리 외상이라도 달라고 하면 모를까... 그러나 주님은 만유이시며 그 만유의 창조적 지성이며 능력이신 말씀(호로고스)이심을 잊으면 안 됩니다. 이 말씀이 지금 우리 가운데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주께서 ‘하나님의 믿음을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과 하나가 되도록 기도하십시오. 묵상하고 사모하십시오. 그 다음엔 확신이 오는 대로 ‘주께서 쓰시겠다’고 선언하십시오. 그게 바로 주님이 보여주신 기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