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나신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요일2:28절)
하나님의 자녀가 가져야 할 것은 자신 존재에 대한 가치 인식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겸손이란 말에 휘감겨 만왕의 왕의 자녀의 자긍심을 잃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분재를 휘어잡듯 만들어진 겸손보다는 소나무 새순처럼 위로 뻗어가는 힘찬 기상이 하나님 보시기에 훨씬 더 좋을 겁니다. 벼가 모내기를 하자마자 고개를 숙이면 병든 증거입니다. 그렇듯 그리스도의 생명을 맛보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다윗처럼 ‘여호와는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며,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시27:1-2) 하는 강한 자신감과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이런 확신에 차 있는 사람을 보고 교만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사람들이 구원의 확신이 꼭 필요하다고 말을 합니다. 확실한 출발이 신앙의 성숙에 결정적인 요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죄 사함이 구원의 기초인 것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릇을 씻는 목적은 무엇을 담는 것입니다.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아담 안에 있는 죄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신 목적은 거룩하신 그 분을 우리 안에 모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얻고, 그 의로움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서 계속적으로 생명의 공급을 받을 수 있는데 까지가 구원의 확신을 위한 기초임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윗처럼 바울처럼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그 안에 있는 부끄러움 때문입니다. 생명의 질은 바로 그 영광입니다. 사람과 짐승, 새와 물고기의 생명은 서로 영광이 다 다릅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얻지 않고는 하나님의 영광 앞에 당당히 설 수 없습니다. 아버지 앞에 그 아들이 당당하게 나아가는 것을 교만이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이건 믿음의 확신입니다. 그리고 자격지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요1:12)는 자격과 같은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만이 하나님을 아바아버지로 부르며 그 은혜의 보좌 앞에 떳떳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주의 강림을 기다릴 수 있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는 생명 없는 자들은 너무 무서워 ‘산아 나를 좀 가려다오 바위야 나를 덮어다오’ 애걸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얻고 그 안에 거하는 자들은 영광중에 나타나실 예수그리스도를 부끄럼 없이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한 공로? 어림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에 의한 영광만이 다시 오실 주 예수그리스도를 피하지 않고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어서 오소서’하고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생명의 나타내심을 기대하며 주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