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신앙의 결론

새예루살렘 2009. 2. 18.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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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2월 17일 화요일, 오전 08시 25분 46초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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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결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율법에 기록한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은 신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요1:14, 34-36절)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정의에 대한 공로나 나눔 그리고 이웃에 봉사한 일에 그 가치를 부여합니다. 그래서 테레사 수녀 같은 분을 매우 높이 평가합니다. 맞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래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일을 하는 분들의 고백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기도를 했으나 만나지 못해 마음이 새까맣게 탓다’ 든가 ‘하나님의 내 안에 계시는지 잘 모르겠다’하는 말이 나와서는 안 됩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신앙의 기준과 세상이 기독교에 요구하는 신앙의 모습이 서로 현격하게 다릅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고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그저께 한 형제와 복음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중에 한국에 있을 때에 한 전도단체의 대표 목사의 말씀이 좋아서 집회마다 따라 다니고 그의 테이프를 거의 다 들어봤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형제의 입에서 ‘그 목사님의 메시지는 결론이 없데요’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내가 ‘믿음의 결론은 히브리서입니다’ 하고 숙제를 안기듯이 짧게 대답했습니다. ‘율법이냐 은혜냐, 예수를 영접하라’는 등의 초보적인 전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아무 쓸데도 없고 공로도 없는 죄인을 값없이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은 있으나 그리스도 안에서 더 이상 나아갈 때가 없으면 그 에너지는 당연히 엉뚱한 방향을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를 몇 년 하고 나면 제자리에서 연자방아를 돌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이 시대의 현재 기독교의 딜레마입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성령이 들어오셨다가 떠나실 수도 있다 없다 논쟁으로 나날을 보내기도 합니다. 신앙의 대장정에 있어서 그 출발선도 넘지 못하는 수준의 신학입니다. 지도자들의 영적인 지식이 그러하니 ‘말씀이 육신이 되어’하면 역사적으로 오신 예수님만 생각하고, 태초 안에 계신 말씀, 만유의 주재이며 에너지인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하나가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계심을 믿을 수가 없지요.  


   나아가서 하나님이 ‘너희는 신이다. 말씀을 받은(되어진) 자들은 신(데오이)이라’ ‘데오이’는 ‘하나님들’이라고 하는 말인데 그대로 직역하면 유대인들처럼 ‘무엄하다 감히 죄인인 인간이...’하고 돌이 날아 올 겁니다. 예수님이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신 말씀에도 온갖 비방과 모함을 당하셨는데 신앙의 결론이 ‘데오이’ 라고 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선뜻 나설까요? 지금 당신은 신앙의 결론을 가지고 있습니까? 오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십시오. 그리고 그 영광스런 축복이 희미하게나마 다가오면 로마서를 거쳐 히브리서로 가십시오. 거기에서 이 말씀에 대한 증거와 신앙의 결론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