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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여! 살아있는 의를 선포하라

새예루살렘 2009. 6. 4.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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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5월 30일 토요일, 오전 07시 32분 10초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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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교회여! 살아있는 의를 선포하라

  만약 모든 사람 앞에 높이 치켜들 사상과 우러러 볼 수 있는 사람의 이름과 평생 목청껏 부를 노래가 있으면 행복할 것이다. 그게 사람들 사이에 합의된 의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사람들에게 지지를 얻는 명분을 제시하는 것을 의로 생각한다. 종교인 또한 자신의 들의 사상과 행동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화를 주면 의로 생각한다. 사업가는 정당한 방법으로 부를 창출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함께 일하고 나누는 것을 의로 여긴다. 문제는 다 한 쪽으로 치우쳐있다는 점이다. 거기다가 북한은 국가의 생존을 핵이나 미사일에다 걸고 연일 쏘아대고 있다. 이게 그들이 살기위한 명분이며 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하나 되어 사랑하지 못한 것은 양심의 차이 때문이다. 그 양심에 의한 의의 기준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한 분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다음의 추모의 물결을 보면서 이 시대는 사람들의 의를 제시하는 슈퍼스타를 원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가룟 유다의 장렬한 죽음이 의냐 베드로의 치사한 통곡이 의냐는 나중에 이야기 하자. 이 추모의 열기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잘 살기 위해서는 웬만하면 덮고 가자는 반칙 많은 실용주의의 경제이론에 지쳐있음을 알 수 있다. 과정보다 목적이 우선이 되어 꿩 잡는 것이 매 아닌가 하는 성공지향적인 현대의 사상에 대한 거부감의 표출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욕구불만을 토해 낼 대역을 찾았다. 무언가 알지 못하는 자신의 내면을 표현할 의인을 동경한다는 의미이다.


   그게 자신이 처한 상황의 반전의 명수이기도 하고, 소탈한 서민적인 모습일 수도 있고, 군중들의 키에 맞추는 사랑이나 어휘일 수도 있다. 그런 인간적인 모습이 고체화 되어 사람들에게 녹아들지 못하는 종교의 가르침 보다 더 위력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진정한 의에 대한 목마름이다. 잘 살기 위하여 달려온 인간들의 본성의 반추이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경쟁에 의한 피로감이며 일등이 아니면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사회체제에 대한 반란이다. 가진 자들의 의의 기준에 대한 거역이다. 그게 한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알지 못하는 기대에 대한 상실감과 눈물과 소리침이 크게 뭉쳐져 나라 구석구석 꿈틀거린다.


   왜 성공만 의라고 여기는가? 그런데 많은 가진 자들이 많이 모여 큰일을 하고만 있으면 의로 여기는 교회는 없는가? 그게 대형교회 출신의 대통령의 뇌를 지배하는 신앙의 원리라면 큰일이다. 교회여! 이제 모범생을 뽑아 쓰고 부한 자를 앞자리로 모시는 처세를 벗으라. 대신 생명력이 있는 하나님의 의를 크게 외쳐라. 평강이 있고, 기쁨이 있고 소망이 있는 의를 이 땅에 쏟아 부어라.  목회자들이여! 사랑의 에너지가 되는 메시지를 만들어라. 잘하라 잘되어라 소리는 이제 그만 둬라. 하나님의 의인 그리스도를 살아있는 실체로 그대로 전하라. 부둥켜안을 의이며 평생 목숨 걸고 사랑할 만한 의이며 영원히 부를 노래가 되는 의임을 알게 하라. 그리하여 저 수많은 군중들의 배고픔과 목마름을 교회가 먹이고 마시우게 하라. 그리고 그들을 노래하게 하고 춤추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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